유난히 더웠던 올여름의 기억. 그 어느 해보다 폭염과 홍수로 아팠던 지구의 모습을 지켜본 2022년의 여름이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름에 퇴사를 해서 시원하다 못해 춥던 회사의 에어컨 없이, 집에서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그리고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과 남아시아 지역까지,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들려왔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5년째 살고 있는 손정은 경제전문관도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고생한 기억이 있다고 나눕니다. 파스타 소스 재료인 토마토나 와인 값도 치솟아간다고 해요. 그래도 로마라니, 저에게는 마냥 낭만적입니다. 커피와 gourmet 음식의 천국인 로마에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로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음식이었는데, 손정은 경제전문관이 마침 식량안보에 대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정확한 한국 직함은 없지만 식량안보 경제전문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로마에는 여러 국제기구가 있는데요, 그중 한 곳에서 중남미의 식량안보에 대해 현황을 조사하고 전망을 예측하는 Economist로 일한 지 벌써 5년이 넘어갑니다.
처음부터 로마로 오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경제학자가 되려던 것도 아니었고요. 전 언어 전공자입니다.
대학교는 클 대에 학문 학자로, 공부하러 가는 곳이잖아요. 저는 스스로 ‘무엇을 공부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언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불어를 부전공했어요. 중국어는 고등학교때 했고, 영어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페루에서 인턴을 하며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식민지 역사를 겪었지만 비교적 짧은 시기에 경제 발전을 이뤘는데, 페루는 물론 식민지 역사가 더 길긴 해도 어째서 경제 발전을 우리나라처럼 하지 못했을까? 개발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것이죠.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개발경제정책학 (Master of Public Policy and Economic Development)을 공부했어요. 그러나 정책도, 개발경제도 궁극적으로 경제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잖아요. 유난히 경제학자인 교수님들이 많았던 영향을 받은 것도 있는데, 사실 어떤 수식이 나오면 이해는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또 내가 원하는 수식은 어떻게 만드는지 더 알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경제학 전공으로 공부를 한번 더 하게 되었어요.
결과적으로는 경제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식량 생산으로 지역 경제 전망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전공으로 배웠던 스페인어와 불어를 필요로 하는 환경에서 일하며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이어서 더 재미있고 즐겁다는 손정은 경제전문관. 식량안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Availability of food
Access to food
Utilization of food
Stability
라는 네 가지 필러(pillar)가 식량안보의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손정은 경제전문관은 중남미의 시리얼 생산량을 예측하고 (availability) 식량가격을 분석하여 국민들에게 식량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지 (access)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곡물 가격의 변동에 따라 실제 취약계층이 구매가 가능한지 파악하는데요, 곡물을 조사하는 이유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취약계층일수록 하루 섭취량 중 곡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기 때문이에요. 또 국제 식품 무역 중에서도 곡물 거래가 가장 비중이 크거든요. 가축 사료에도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무역량이 많은 탓이죠.
지금은 전쟁 등으로 세계정세가 불안정하고 무역도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 비료 가격도 상승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곡물 가격 상승이 발생하고 있는 거고요. 중남미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곳에서 영향을 받고 있어요. 물론 아프리카 국가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긴 하지만요. 문제는 비료값이 상승하면 가격탄력성이 높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비료 구매를 포기하게 되어요. 그 결과 곡물 생산량이 낮아지고, 수확량도 떨어지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지만요, 손정은 경제전문관은 일을 하며 점점 더 중남미 현장에 대한 열정이 커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사람들과 일을 하며 그들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공감대를 쌓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로마는 대게 따뜻한 날씨예요. 식재료도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지요. 저는 출퇴근도 걸어 다니면서 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높다고 볼 수 있어요.
회사에서 종종 언어 수업을 듣고, 화상으로 중남미 담당자들과 미팅을 가져요. 점심시간에 옥상에 올라가면 로마 시내에 가득한 녹지를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어요. 회사 커피가 맛은 또 얼마나 있는데요. 그리고 또 오후 업무를 마치면 퇴근길에 정육점에도 들르고 과일가게에도 들려요. 좋아하는 헌 책방도 생겼어요. 특별한 날에는 리쿼샵에도 들릅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많이 없어졌어요. 저도 빨대 사용을 안 한 지 오래된 것 같아요. 정육점이나 과일가게를 가면 늘 쓰던 종이가방을 가져갑니다. 주인아저씨도 이젠 알아보세요. “너 그 종이가방 재활용하는 너구나.” 인사가 오가면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져요.
저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데,
사람들이 봐주고 그걸로 대화가 되며 친밀도가 생기더라고요.
듣기만 해도 어쩐지 충만해지는 느낌이에요. 대형마트에 가서 한 번에 모든 볼 일을 다 봐야 하는 우리의 바쁜 일상과 괜스레 비교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종이가방을 들고 가면 비닐 쓰레기도 거의 생기지 않는대요. 제품과 함께 비닐도 사야 하는 우리의 삶에서 종이가방을 재활용하며 가게 주인들과 안부를 나누며 여유 있게 장을 보는 삶은 조금 부럽게 보입니다.
더가디언 등의 뉴스를 보면 기후 이야기가 헤드라인으로 꽤 자주 실립니다. 보고 있으면 불안함이 엄습해요. 한국 언론에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없는 것과 비교가 되기도 해요. 그래도 비교를 하자면요.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선 이야기라도 많이 해서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결국엔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내 자리에서 해나가고, 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관심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 작은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나를 만날 수 있거든요. 작은 것들이 모여 일상의 습관이 되는 거잖아요.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 거기서 우리는 지속할 수 있는 재미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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