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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Sep 02. 2024

Exit to Iceland

신혼여행으로 아이슬란드에 갑니다.


1.


결혼 준비에 회사 상황에, 당시 난 지쳐있었다. 결혼 준비는 (당연하지만) 결정과 결정의 연속이었고, 회사에선 마치 아이디어 착즙기가 된 것 같았다. 즙을 짜낸 뒤 버려지는 껍질처럼, 나는 말라비틀어져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그 작은 결정마저 버거웠다. 하와이, 괌, 발리, 몰디브 등의 휴양지 옵션이 있었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유럽 옵션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특별하게 마음이 가는 곳이 없었다. 원하던 곳이 있었으면 결정이 쉬웠을 텐데.. 또 환율이 부담스러웠던 미국은 제외, 작년에 여행했던 호주도 제외, 중동이나 아프리카 국가도 제외.. 구글맵을 켜놓고 몇 번이나 고민했다. 결정을 미루고 싶은 나, 그리고 결국 아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야지 본인의 의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그. 우리는 좀처럼 신혼여행지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이지 못했다.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삶에 지쳐) 여행에 대한 흥미와 기대 따위가 없었던 당시 내 상태가, 나 스스로에게도 걱정이 되었다. 벌써 인생 노잼 시기가 오면 어떡하나.


그래서 아이슬란드는 wish list에 담아두었다가 결제 직전에 선택된 옵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단순하게 '그냥' 선택된 결과에 가깝다. 선택하고 나서 보니 마침 휴가를 평소에 비해 길게 쓸 수 있었고, 마침 자금이 조금 있었고, 한국은 더울 테니 시원한(추운) 나라에 가면 좋지 않냐-며 합리화를 할 정도였다. 이참에 자연도 실컷 보고 좀 생각을 비우고 회복하고 오자. 딱 그 정도. 심각하고 진지했다면 아마 결정하지 못했을 그 나라, Iceland로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다.



2.  


여기서 결정이 끝이 난다면 좋았겠지만, 무슨 항공을 타고 어디서 경유할 것이며, 여행은 어떤 차(일반 승용차? 경유 휘발유? 오토 수동? 아니면 캠핑밴?)를 빌려서 어디에서 숙소를 잡아야 하는지... 사실 여행 한 번 갈 때 이 정도의 결정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크게 어렵지 않게 끝낼 수도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당시 내 상태가 뭔가를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국적기를 타느냐, 그렇다면 어디서 경유하냐, 런던, 프랑크푸르트 or 파리? 경유지에서 레이캬비크까지 가는데 드는 비용은? 경유지에 숙박을 추가하나? 아니면 최단거리이자 최저비용으로 핀에어를 탈까? 레이캬비크 도착 시간에 렌터카를 빌릴 수 있느냐 아니면 숙소를 잡아야 하느냐...


이래서 패키지여행이 존재하는가 보다.


찾고 찾고 또 찾은 결과, 국적기(아시아나)로 런던 경유, 경유시간 3시간, Icelandair로 레이캬비크 저녁 11시 도착하는 방법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늦게 도착하는 만큼 공항에 붙어 있는 호텔에서 1박을 하고, 이후 일정은 캠퍼밴을 빌려서 먹고 자고 이동하는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하기로 했다.


Aura Reykjavik Airport Hotel에서의 1박



(참고)

- 대한항공은 런던 경유 시 환승시간이 아시아나보다 짧았다 (경유시간 2시간 정도). 그리고 더 비쌌다.

- 핀에어는 밤비행기라서, 퇴근하고 바로 공항으로 쏘지 않으면 아슬아슬했을 보딩 시간이었다. 휴가를 하루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짐을 들고 출근해서 칼퇴 후 바로 공항 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헬싱키 경유가 45분이었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 레이캬비크 도착 후 공항 밖으로 나가서 숙소를 잡을 수도 있었다. 공항 옆 호텔은 1박에 40만 원이나 했기 때문. 그러나 차로 5분 거리인데 택시비가 2만 원이 넘는다는 말도 들었고, 그렇게 해서 가는 곳이 1박에 20만 원이나 하던 게스트하우스였기 때문에, 장시간 비행 후 차라리 편하게 자는 쪽을 택했다.



3.


마침 아이슬란드에 간다니 서진이네 2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겨울에 촬영한 것 같았다. 보통 아이슬란드 블로그나 유튜브를 찾아보면 겨울 여행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오로라를 보려면 겨울에 가야 하니까.. 그렇다면 대체 8월의 아이슬란드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거지? 3도~10도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국은 33~35도에 육박하고 있었으니, 춥겠거니-보다는 '안 더워서 좋다'고만 생각했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캠핑을 아이슬란드에서 하게 된다. 뭘 챙겨야 하지?


한국의 초겨울 정도를 예상하고 짐을 쌌다. 경량 패딩과 플리스 재킷부터 고어 바람막이와 기모 추리닝 정도. 마지막에 혹시 몰라 패딩바지를 하나 더 챙겼는데 신의 한 수였다. 털모자와 겨울 양말까지 챙겨놓고서, 깜빡하고 장갑을 놓고 와버린 나머지 결국 아이슬란드에 도착하자마자 national brand인 Icewear에서 장갑부터 샀다. 비싸서 눈물 났지만 장갑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Icewear의 히트텍 같은 제품들. 상의 한 벌에 14만 원이다. 물가 체감용으로 남겨온 사진.



(참고) 생필품 물가도 당연하지만 외식 물가도 비싸기로 유명한 아이슬란드. 외식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양하게 해 먹을 것들을 챙겨가면 좋다. 특히 캠핑을 할 예정이라면 수세미와 세제는 챙겨가자. 캠핑 사이트별로 수세미와 세제가 구비되지 않은 곳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캠퍼들은 1회 용품이나 비닐포장된 제품을 최대한 쓰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수저도 (나무젓가락이나 플라스틱 수저 대신) 이왕이면 씻어 쓸 수 있는 수저를 가져오자. 한국에서 간식을 많이 싸 올 것을 추천! 장거리 운전이 고되기 때문기 때문에 미니약과와 초콜릿 여러 개를 가지고 갔는데 만족스러웠다.



도피하듯 현실을 떠나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도 모른 채 왔지만, 어쨌든 둘 만의 신혼여행이다.

이곳, 아이슬란드에서.


레이캬비크 국제공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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