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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Mar 27. 2023

사랑하는 상대가

현실인일 때와 덕질의 대상일 때

평소와 다름없는 월요일인데 가슴이 답답하다. 쓰고 나니 이 문장은 아이러니다. 직장인에게 월요일은 원래 막막한 날이 맞다. 주말에 쇼핑을 하면서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것에 감사한 것도 잠시, 월요일 오전부터의 미팅은 힘들다. 난 한 번도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뻔한 쳇바퀴 일상을 돌면서 혼자 천국과 지옥인 기분을 오가는 것인가. 그런 양극단은 좀 오버다. 다만, 지난 세월들 속에서의 덕질에 대한 환상과 달콤함은 때때로 내게 현실 직면을 교묘히 피해 나가게 했다. 삶의 목적이 덕질로 귀결되어 있을 때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복잡한 것 생각 안 하고 돈, 체력, 시간만 확보하면 되니까. 조금 마음이 가라앉으면, 비로소 폭풍 같은 감정들 속에서 빠져나와 오늘처럼, 현실의 심연을 바라본다. 비로소 나의 현재를 마주 본다. 덕질과 현실 사이의 끝없는 밸런스 싸움이다. 어느 쪽이 맞다고 하기 힘들다. 두 개가 공존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덕질'을 빼고 내 인생을 가만히 돌아본다. 모든 이야기를 여기에 쓸 수는 없겠지만, 그 황홀경의 순간들을 제외하고도 나는 롤러코스터를 꽤나 탔다고 표현하고 싶다.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면서 힘들면 가만히 멈춰 서서 방향을 찾아야 했으나, 길 위에서조차 쉬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인생에서 어떤 잘못된 방향으로 전속력 질주를 하면 돌아오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인생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를 때는 차라리 하던 걸 내려놓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10여 년 전에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이들이 있었다면 좋았을 걸. 설령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해도, 내 두 귀는 그 말을 들으려고나 했었을까. 나는 계속 도망쳤다. 현실에서 사랑받고 싶을 때마다.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나는 전속력으로 빗 속을 달리는 기분으로 도망쳤다. 그나마 지금보다 어렸기에 다행이었다고 생각하자.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길었던 적도, 짧았던 적도 있었다. 현실에서 만난 사랑들과는 그렇게 덧없었는데, 한 번도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는 사랑들과는 그리도 오래 관계가 유지된 것을 보면. 사랑은 절대적으로 판타지 그 자체였나 싶다. 연애는 사랑에 대해 처음 가졌을 판타지를 산산이 부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덕질 대상에 대해 그렇게 해오는 것에 익숙했던 내게는 그랬다. 서로의 눈높이에 서로를 맞춰가면서 첫인상으로 가졌던 환상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했던 거의 모든 연애들에서 환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견디기가 제일 힘들었다. (맙소사.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러고 나서는 상처를 받는 게 싫어서 늘 거의 먼저 도망쳤다. 그건 마치 길 위에서 방황하면 멈춰 서서 내가 진짜 원해서 갈 방향을 생각해봐야 하는데 눈 딱 감고 달린 것과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모든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길 바라면서' 일련의 선택들을 했고, 종내에는 혼자 남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주 쉽게 뭉뚱그려 말해보면 이게 맞다. 딱 10년만, 시간을 되돌려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준다면. 그 사이에 만난 모든 아름다웠던 인연들에게 나를 좋아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티브이 속, 오디오 속의 누군가가 아닌 현실인에게 느꼈던 감정들에 감사하고 싶다.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오늘 꾼 꿈 때문이다. 강렬한 경험이라는 건 너무 무섭다. 이렇게도 길고 긴 여운을 내 인생에 남길 줄은 몰랐다. 조금 더 마음이 가라앉으면 살을 더 붙여 나가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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