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들고 있는 건 좋은 일일까
한참 동안을 체한 사람처럼, 내 안의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풀어내고 헛헛하던 몇 년 간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이야기들은 살면서 축적될 터인데, 나만이 특별한 듯이 - 그리고 그 몇몇은 정말 특별하게 반짝였다- 거침없이 쓰고 또 써 내려갔다. 쓰다 보면 아련할 때도 눈물이 흐를 때도,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고 그건 그대로 참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내 안의 이야기들은 끝없는 샘물처럼 솟아 나리라 믿었으니까.
코로나는 와인처럼 통에 갇힌 추억들을 글이라는 형태 안에서 숨 쉬게 해 주었지만, 그 이후의 나날들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그럴 수가 없었다. 경제적인 상황들이 이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에 특히 돈을 벌었던 해운물류업, 소비재, 취미 등은 일터로 돌아가야 하면서 국경이 풀리자 흑자에서 적자로 바뀐 곳도 많은 듯하다. 왜냐하면 코로나 '호황'일 2년여간 많은 사람들이 채용되었는데 경제적인 면모가 회복되지 않자 정리 해고된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회사라는 조직이 아니어도 전혀 다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음에 주목하는 것 같다. 일자리는 많지만 사람들은 일을 가린다. 무엇이 이유일까?
여행지의 호텔도 한 번 업그레이드를 받으면 그다음엔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듯이, 회사가 전부가 아닌 세상을 봐 버렸다. 일이 전부가 아니라 삶의 다른 즐거움이 있음을 봐버린 이후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기서 괴리감을 느낀다. 글을 쓰고 글을 읽으며 사유하던 순간들의 충만함이 그립다. 체력적으로 회사 생활에 올인해야 하는 지금의 시간이 너무 아깝기만 하다. 재화의 수단으로만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한계점일까. 15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지금 한 번쯤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돈을 버는 5일 동안을 희생해 가치로운 시간을 보내는 주말 이틀을 구매하는 지금의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할지를. 감정을 일부러 메마르게 해야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기에 - 내 직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 반대의 선상에 있는 말랑한 글을 쓰는 일이 너무 버겁다.
그래서인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분명히 많았는데 내 안에서 사그라든다. 그 경험들 속에서 상처받았던 것도 힘겹게 일어섰던 일도 이렇게 휘발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데 기록을 하기 버겁다. 예민함에서 무뎌지고 있다는 것은 순리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까? 내가 꿈꿨던 방랑 시인의 삶처럼 세상의 일들을 내 어깨에 짊어지고 고뇌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평행선으로 유지해 나가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 이전에 우선 건강부터 챙겨야 할 듯하다. 2024년의 첫 달은 벌써 이렇게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