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맑아진 어느 날 밤의 일기
손빨래를 해서 욕실 안에 널어둔 속옷에서 물이 뚝 뚝 떨어진다. 삶에 경종을 울리는 소리처럼.
정신 차리고 지금의 너를 다시 바라보라고 재촉한다. 머리를 말릴 때마다 속이 훤히 보이는 머릿속. 탈모의 원인에는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작년부터 급격히 불어난 체중 탓이 크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만 한다. 괜찮다며, 버텨왔지만 직무 변동이 있었던 지난해 말과, 매월 출장으로 정신없었던 올해 상반기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어 준 것은, 2주 동안 나라 세 곳을 다녀온 뒤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다는 판단이 선 오늘에서였다.
식탐은 자기 위안처럼 달콤했다. 요리를 하는 순간에는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도 손이 크다는 핑계로 2-3인분씩 하기 일쑤였다. 외로움. 그것에 대한 회피에서 비롯된 의식 같은 것이다. 혼자여도 괜찮다던 기고만장함은 이번 달 마흔 중반의 생일을 넘기면서,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는' 정리되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감정이 되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아서, 쓰러질 것 같아서. 술과 놀이와 자기 위안으로 치장했던 나날들 속 심연에는 울다 지쳐 무력하게 세상과 단절하려 하는 자아가 희미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답은 늘 명확하다. 핑계 대지 말고, 나 자신에게 소리쳐야 한다. 이 '단 하나의 삶'을 놓고 바보 같은 선택들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오랜 시간 한 자리에 머물러 있던 결과는, 지금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진 빠지고 위험했던 5월 둘째 주의 출장길에서, 김영하 작가의 수필집 '단 하나의 삶'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의 이야기- 즉,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것은 여전히 감사한 경험이었다. 업무용 노트를 꺼내 급히 휘갈겨 썼지만, 읽을 수 없는 부분이 30퍼센트 정도는 된다.
나는 원래 악필이었을까? 손가락을 다쳐서 펜을 쥐는 법이 바뀌었던 열 살 즈음의 어느 날. 지금도 가만히 보면 내 글씨는, 마음 속 하고 싶은 말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나중에 보면 알아보지 못할 때도 많다. 내 기억에 남는 순간들 속에는, 분명히 하고 싶었으나 상대에게 하지 못한 말과 -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을 때도, 나빴을 때도 있었겠지만 - , 그 상황에서 느낀 깨달음을 기록하지 못하고, 살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때도 많았다. 20여 년 전에 이미 '평범한' 삶의 궤도를 이탈해 버린 나는 어떤 꿈을 꾸면서 덜컥 회사를 나와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던 걸까? 그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나는 삶의 추이를 보면서 인생의 항로를 꽤 자주, 수정 중이기는 하다. 다행인 것은 쌓인 나이의 두께만큼, 무모한 선택을 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 하나일까. 그래서 변화가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지 않을 뿐인 건가. 지금의 나는 그저 도약할 연습을 하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거센 파도가 다시 치면 기꺼이 그것에 내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게 나의 기질이니까.
올해 들어 새로 사귄 친구가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너는 왜 너의 이야기를 하지 않니?
외로움을 떠올리면 나는, 둥둥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어둡고 침침한 조명과 담배 연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잘 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주욱 살아오며, 또는 살아지며 내 상처의 기억들은 또 다른 상처로 덮였고, 그 안에서 나를 구제해 준 고마운 인연들도 있었다. 생일을 맞아 주변을 돌아보니 아직 내 주변에 남아준 이들이 있어서 감사했다. 그 마음들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정중하게 내 인생을 살아내보고자 다시 한번 다짐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