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나는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너무 오랫동안 한 자리에 있었던 결과가 끝도 없는 외로움이었다는 걸 모른채로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 그것인 줄 알고 오랫동안 마음의 둑을 쌓고 살았건만 결국은, 지난주 글쓰기 모임에서 이별과 관련된 주제의 글을 쓰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봇물 터지듯 울어버렸다. 그렇게 가끔은 글보다도 말로 해야 다가서는 감정들이 있다. 인정하지 않더라도 말로 꺼내놓다 보면, 밥알이 곤두서듯 툭 걸려버리는 지점은 내 안에서 소화가 안 된 감정들과 마주할 때이다. 난 '엄마'라는 단어에서 몇 십 년 그렇게 걸려 있다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을 만났다가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 벗어나고 있는 지금, 숨이 차게 걸려 버린 지점을 찾았다. 보지 않고 외면해 버린 탓에 몇 배는 커진 어둠 덩어리 슬픔을. 한 남자가 싫어서 그와 헤어지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었던 내 꿈을 같이 버렸다는 자책감을 아주 오래 외면했다.
플래쉬 백처럼 찾아드는 감정들에 휘둘렸던 글 쓰기 모임 이후에 며칠을 일 끝난 뒤 혼자서, 혹은 친구와, 또 회식자리에서, 나는 술을 마셨다. 술 자리에서 떠들면 그때야 즐거울 지 모르지만, 다음 날 아침에 전날의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딱 두 배가 되어 나를 덮친다. 그 다음 날에는 네 배, 그 다음 날에는 여덟 배가 될지도 모른다. 여전히 소화중이라고 추정하는, 8년 전의 이별 직후에는 6개월 동안을 술을 안 마시면 잠을 못 잤던 적도 있으니까. 어느 날 밤 술에 진탕 취해서 집에 와서는, 위를 보호하려는 생존 본능(?)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잔 날이 있었다. 그 다음 날 깨고 빈 냄비와 그릇을 보았지만, 라면을 먹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서워 겨우 멈춰 섰던 나.
지난주 수요일부터 닷새 연속 술 마시고 정신 차린 지금 든 생각은, 내 안에서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깨닫는 '물리적인 시간'은 줄어든 것 같지만, 술부터 들이부을 것이 아니었다. 8년 전에도 지금도, 잘못된 나의 문제 해결 방식은 여전히 벽에 부딪힐 때까지 달려나가서, 어딘가 망가지고 나서야 멈춰서는 내 무모함이다. 괜찮다고 하면서 감정을 바로 보기 두려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고 나서, 타인이 아니라 내 안의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워서 어떻게 살지 싶을 때쯤, 기대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위로를 받고 또 나아지고는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놓아버린 꿈이 있다면, 이루고 있는 꿈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내가 원하는 걸 알고 세상에 공표하면 이뤄질 거라고 지난 주말 나를 위로해 주던 이는 말해 주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은 일들이 참으로 많다. 그 일들에 회한이 들면, 최소한 앞으로는 똑같은 대응 방식으로 살지 말자고 다짐해 보았다. 동시에 생각해 보았다. 내가 최근 10년 동안, 온 힘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나 자신을 위해 바라고 원해본 건 무엇이었을까? 타고 난 공감력이 큰 탓에 타인을 위로하는 게 아닌, 나 자신의 감정을 위해 진심을 다해 공감해 주었던 건 또 언제란 말인가. 너무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게 더 익숙한 아이었어서, 자라면서 괜찮은 척하지 않고 감정을 터트려 버리는 것 자체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일이 있어도 마주보고 실타래를 풀어나가면 점점 더, 나와의 화해가 빨라질 거라고 믿는다. 어쭙잖게 타인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지 말고 좀 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이제는, 괜찮은 척하는 게 신물 나게 싫어진다.
삶의 어떤 부분들은 아파서 들여다보기 힘들 때도 있지만, 상처를 그냥 두면 나중에 곪아서 터지는 것이 -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두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배운 며칠 간이었다. 참 다행스럽게도 그 며칠 간 나는 다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았고, 다른 이별을 하지 않았다. 그저 없어진 건 내 지갑에서 나간 술값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