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아이돌 세븐틴의 호시를 좋아하게 된 4년 차 캐럿인 나는, 8년 전 자발적으로 이혼을 택했고 아이 가지는 것을 포기했다. 이혼할 때는 몰랐다. 내가 평생 아기를 못 가질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놓아버린 게 단순히 맞지 않는 배우자뿐 아니라, 현모양처의 꿈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학에 다닐 때의 나는 꿈이 참 많은 20대였다. 항상 'Dream big'을 남자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내 꿈은 원대하며, 멈추지 않을 것이니 너도 크게 꿈을 가지라고 말했었다. 스스로 주도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외로운 마음은 꽁꽁 숨겨버린 채. 한번쯤 기대 봐도 좋을 것을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기대면, 그 사람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불안 불안해 내 손을 잡은 손을 놓기 일쑤였다. 바꿔 말하면, 나를 제일 외롭게 해 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후로 20년 즈음이 흐르고 나서 최근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손가락 다섯 개 정도로 인원수를 줄일 수 있었다. 나의 연인들은 하나같이 내게서 엄마 같은 자애로움을 제일 바랬던 아이의 모습을 가진 남자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듯, 나와 비슷한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들은 그저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처럼 그런 마음으로 인생의 한 때를 보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했을 것이고, 세상살이가 처음이라 다가오는 파도에 지레 겁먹고 잡은 손을 놓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겁쟁이 이는 내가 놓은 것이 맞다). 그래놓고 엉엉 더 많이 울어버린 것도 나였을 것 같다. 사랑이 지속되는 감정인 지 모르고 시작한 이별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멀어지는 괴로운 것이었다. 거기서 파생된 우울은 시야를 가렸고,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영 하는 뗏목 같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데 겉으로는 괜찮은 척 남들처럼 살아보려니까 자꾸 병이 생겼다. 그럴 때는 잠시 쉬어가도 좋았을 것을 그랬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감정은 유사 연애 같은 감정이라고 하던데, 나는 대중매체에서 호시를 보면 내 아이가 있었어도 저렇게 이뻐했을까 싶게 반응한다. 나는 참, 결혼했을 때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었다. 그 어렵다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꿈도 꿔 본 것이다. 그냥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미성숙했는데. 아이의 마음으로 아기를 가졌었다면, 우리는 행복했을까. 지금의 나는 우울과 회한들에서 아주 많이 멀리 와 있다. 최대한 많이, 가지지 못할 삶의 모습을 보려 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지금의 매일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매일 나는 너와 이별하고 있고, 그때의 나와 이별하고 있다. 과연 내가 돌아갈 곳이 있을까 늘 반문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내가 가야 할 곳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현모양처의 꿈을 꾸던 나는 이제 김삿갓처럼 방랑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몰입할 수 있는 걸 찾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고, 삶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 비로소 손가락 다섯 개 안으로 좁혀진 지금에 감사한다. 숨이 막히면 숨을 쉴 수 있는 배연관을 찾아서 헤매었던 그때의 나는 안녕. 스스로 땅에 발을 딛고 자가호흡을 할 수 있는 지금은 그저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