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잘하던 아이 4

음악으로 연결된 세계

by 장서율

이번 주말 내 최애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새 월드 투어 'New_'가 인천에서 포문을 열었다. 올해는 바빠서 1월에 있던 싱가포르 공연 말고는 딱히 해외로 갈 엄두를 못 내고 현지의 친구와 온라인으로 9월 13일 공연을 관람했다. 2025년의 세상은 방구석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면서도 현장의 열기와 함성을 4K 영상으로 받아 볼 수 있는 '너무나도 편리한' 방식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우리는 응원봉을 들고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도 췄다. 마음의 무엇인가가 풀리고 아주 푹 잘 수 있었다. 사실 9월 12일 금요일 밤의 나는 1주일 동안의 일 때문에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잠을 잘 수가 없어 수면제를 먹고 겨우 눈을 붙였다. 수면제를 먹고 난 다음 날은 항상 머리가 몽롱다. 공연을 보고 편안해진 마음이 수면제보다 훨씬 건강하게 내 몸에 잘 듣는 '약'이라는 걸 깨달으며 오늘 아침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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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으로 전학 가기 전, 그러니까 1993-1994년의 나는 마이마이로 음악을 즐겨 듣던 보통의 중학생 아이였다. 그 시절의 나는 Michael Jackson과 푸른 하늘, 이승환, 듀스, 그리고 미스터투 (Mr. Two)를 즐겨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걷던 길과, 이어폰을 하나씩 끼고 같이 걷던 친구와, 그 시절의 재잘대던 꿈들이 그 노래 속에 고스란히 있다. 그 시절에 지구촌 영상음악 (GMV)라는 음악 전문 잡지도 있었는데 서점에서 잡지를 구매하면 5-6곡 정도 유행하던 팝송을 수록한 VHS(비디오테이프)를 부록으로 주시곤 했다. Take that과 Mr. Big 같은 그룹을 그렇게 알게 되었고 영화처럼 장면이 이어지듯이 홍콩에서도 그들의 노래 'Back for good'과 'Wild world'는 유행했다. (잡지의 행방은 모르지만, 이 비디오테이프는 시대의 유물처럼 지금도 부모님 댁 어딘가에 잘 보관되어 있다)


음악을 듣던 나의 자세는 자못 경건했다. 홍콩에 가서 처음 접하게 된 밴드 Nirvana의 1994 MTV unplugged in New York은 내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첫 번째 앨범이었다. 'All apologies'와 'The man who sold the world'같은 곡들은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자주 커버되는 곡들인데, 'I need an easy friend with an ear to lend'로 시작하는 'About a girl'은 처음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가 없던 내 마음을 위로해 주던 노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 명반을 듣기 시작했을 때 보컬인 Kurt Cobain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는 이 밴드를 통해서 처음 전학한 국제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었다. 홍콩- 영국인 혼혈이었던 Jeremy는 해사한 얼굴로 기타 리프를 조금은 칠 수 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그 모습에 홀딱 반했던 적도 있다. 영어 공부야 홍콩에 가기 전에도 시작했지만, 팝송을 듣고 그게 무슨 뜻인지 가사지를 보지 않고 바로 알아듣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Micahel Jackson을 처음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의 발음이 특히 더 알아듣기 어렵다는 것조차 구분이 안 되었다) 나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Madonna의 'Secret', 'Take a bow', Alanis Morisette 앨범 'Jagged Little Pill' 수록곡들이 그 시절 MTV, Channel V에 자주 나왔다. 그 후에는 Pearl Jam과 Oasis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나는 Maryiln Manson까지 듣기도 했다.


Kurt Cobain의 유작이 되어버린 앨범 - 그의 끝은 청취자의 한 명인 나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홍콩은 100년 간 홍콩의 지배를 받았고, 특별 자치구였지만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는 서 문화의 영향력이 컸다. 그 이유로 팝송을 Cantonese pop보다는 더 빨리 접하게 된 것도 있지만.. 세기말이 되기전, 80년대 말 90년대 초 그 시절의 홍콩 4대 천황 장학우, 유덕화, 곽부성, 여명 이외에도 - 홍콩의 golden era라고 칭해지는 시절이라서 - Faye Wang의 '몽중인' Teresa Teng (등려군)의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은 지금도 자주 사람들이 부르는 넘버이기도 하고 내게 그 시절을 기억하게 만드는 곡들이기도 하다. 2025년인 지금에도 유덕화는 영화에 자주 나오고, 장학우는 싱가포르에 와서 공연을 하니까, 지금도 관중들은 홍콩 문화의 황금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중에 내 마음속 원픽은 장국영이다. 홍콩인들에게 영원한 '오빠'로 기억되는 그는 내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1996년 12월 31일 홍콩 Coliseum에서 있었던 공연에, 공연 당일 일 때문에 못 오시는 그 시절 내 수학 교사 선생님 '언니' 대신 참여하게 된 것이다. 수학 과외를 받다 말고 선생님이 시간 되면 공연 같이 보러가자는 이 이야기에 부모님 허락을 받고 공연장이라는 곳에 처음 갔었다. 이 날의 티켓은 지금도 잘 보관되어 있고 이 내용을 썼던 글도 아래에 있다.


https://brunch.co.kr/@goikirah69/189


지난 주말 홍콩 센트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 근처에는 내가 학생 때 자주 가던 우체국 옆 도서관도 있다.

이 날의 티켓은 VIP 석이어서 시야가 무척 좋았다. 작은 플래시 라이트를 건네받고 착석한 공연장의 열기와 화려한 조명 아래 핑크색 하이힐을 신고 보라색 눈화장을 했던 장국영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날 그가 부르던 'A thousand dream of you' 노래 속에 환히 웃던 그는 2002년 영화 '이도공간'을 끝으로, 2003년 만우절에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지난주에 다녀온 홍콩에서 나는 굳이 이 호텔에 가서 딤섬을 먹고 왔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마냥. 2023년 5월에 나의 싱가포르 친구와 나는- 우리는 2018년 어느 날 일본으로 같은 공연을 보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났고 많은 이야기 끝에 그녀도 나도 그 시절 장국영을 사랑했음을 알았다 - 와 홍콩 문화박물관에서 있었던 'Miss you much Leslie'에 갔다. 우리는 굳이 내 생일을 축하하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카페에도 갔었다. 그녀는 2003년 이후 꾸준히 몇 년을 장국영을 추모하러 홍콩에 갔었다고 했다. 음악으로 이어지는 정서는 그때를 지나 '지금'으로도 이어지고 우리는 그 안에서 또 다른 여정과 추억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은 기록과 공유를 통해 역사가 된다.


2023년 5월의 나 Miss you much Leslie 전 입구에서.
이 사진은 웹에서 찾아 편집했다. 홍콩인들이 기억하고 추모하는 영원한 오빠 장국영의 인기는 엄청나지만 그의 생애 끝 우울증과 배신감을 생각하면.


장국영의 콘서트 전후, 홍콩에서 두 번째 전학한 국제학교에서 사귄 친구들 중 B는 나에게 그 시절 유행하던 일본 노래 몇 개를 녹음해서 주었는데 - 그중에 하나가 '아이카와 나나세'라는 록 가수의 '꿈만 꾸는 소녀로만은 있을 수 없어'라는 곡이었다. 90년대의 일본 음악 시장은 정말 크고 장르도 다양해서 Chage& Aska의 Say Yes나 오구로 마키가 부른 만화 영화 슬램 덩크의 주제가 'あなただけ 見つめてる (너만 바라보고 있어'), Namuro Amie의 'A Walk in the park' 같은 노래도 좋았다. 그런데 나는 유독 그 중에서도, 록 음악에 꽂혀버렸다. 강한 드럼 비트와 기타 리프에 스트레스를 날리면서, 나도 그들처럼 강하고 아름답게 파멸을 향해 가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 가운데 Nirvana의 Kurt 고도 듀스'의 김성재도 1996년 즈음 고인이 되어 있었고, 이는 사춘기 시절 내게 더 '많이' 죽음을 생각하게 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나'라는 소심하고 우울한 존재를 벗어내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1996년 겨울 어느 날 밤, 방 안 붙박이 장 안에 붙어 있던 세로 거울 앞에 앉아,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가위를 들고 어깨를 훌쩍 넘던 긴 머리카락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짧은 단발머리가 된 나는 마음까지 가벼워졌다. 그날 이후로 나의 취향은 좀 더 확고해졌다. 타인의 길을 가기보다는 나의 길을 가는 내가 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건 아주 길고 험난한 모험이 될 것임을 그때는 몰랐었지 싶다. 그때 이미 마음 어딘가가 부서져 있었으니까.


이 노래는 파워풀하고 시원시원하다. 이 가수의 노래는 이 곡 말고는 잘 알지 못하지만.


1997년이 되어 나는, 시디플레이어에 아침마다 듣던 George Winston의 피아노 음반을 내리고 X Japan의 Silent Jealousy를 걸어놓게 되었다. 홍콩에 가기 전 국민학교 특별활동반에서 엄마를 졸라 바이올린을 배웠고, 국제학교에서도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내게 이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음악으로 나는 나를 둘러쌌던 그 시대를 기억하고, 3-4분 사이에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잊고 있던 것들을 굳이 감정의 우물 속에서 길어내기도 한다. 고맙고 무서운 탤런트의 집합체. 놓을 수 없는 선율들 속에 내 인생도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를 맞게 된 것이 1997년이었기에 다음 화에 집중해서 이 내용을 써 내려가보고자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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