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잘하던 아이 3

그러나 바람을 동경했었던

by 장서율

나는 훌쩍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황소자리 성향으로 매일의 루틴을 지키는 것도 좋아한다. 돌이켜 보면, 가끔 방랑벽이 도진 사람처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회피하는 경향이 생긴 것은 재미있게 홍콩에서의 학교 생활을 이어나가던 나날 한가운데 찾아들었다.


문학 시간에서 자주 쓰이던 학습의 도구는 영화였다. 일상생활에서보다 훨씬 사람들이 많이 죽는 '영화'라는 가상의 현실을 보면서, 사라 선생님은 말씀해 주시려 했던 것 같다. 수많은 비유와, 인간 군상이 있는 영화가 인생의 축소판일 수도 있음을. 리버 피닉스가 출연한 '스탠바이미'나 줄리에트 비노쉬의 '블루' 같은 영화를 보면서 열여섯 즈음의 나는 '죽음'이라는 게 무엇일까를 어렴풋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죽음은 아프고, 영속적인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에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가운데 찾아든 우울감은 다음과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학급에 홍콩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날씬하고 예뻤고 상냥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말실수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인사를 할라치면 나를 피했고, 호의적이었던 그녀의 친구들 또한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한국인/일본인/ 그리고 타 국적의 친구들도 있었지만, 친절하던 그녀의 돌변한 태도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그 며칠 동안 시무룩해져 버렸다. '나를 피하는 것이 분명한' 것을 느끼고는 처음 손을 들고 담임 선생님께 말했다.


'양호실에 가서 좀 누워 있어도 되나요? 속이 좋지 않아요'


양호실 간호사 선생님은 내가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고, 주재원인 아버지를 호출하셨다.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학교에 나를 보러 오셨다. 나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무슨 말을 아버지에게 털어놔야 할지도 몰랐고, 감정을 표현하면 내가 따돌림받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울지도 않았다. 감정이 마비된 사람인양 그렇게 있었고, 그때 느낀 감정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살면서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공부 외 것들에 있어서 자존감이 낮았던 아이였던 나는 몰랐던 거다. 텃세라고 이전 글에 표현했었으나 사실은, 그냥 부잣집 친구의 변덕이었을지도 모를 그 며칠의 시간 동안 나는- 집에서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홍콩에서의 첫 6개월 동안 사실 나는, 방에서 밤에 혼자 많이 울기도 했다. 한국에서 처음 들어갔던 중학교의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말이 통하지 않고 , 자유롭게 영어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 막막해서. 한 번은 가족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는데 엄마가, '네가 울면 아버지가 속상해하셔'라는 말을 듣고 뭔가에 놀란 듯이 울음을 그친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그냥, 힘들다고 하소연할 데가 필요한 아이였다.


친구의 변덕은 며칠 지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다시 내게 반갑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응당 물었어야 할 '왜 나한테 그랬어?'라는 말을 물어보지 못했다. 내가 잘못했던 게 행여 있을까 봐 두려웠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지금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사랑받기 위해,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오던 아이 었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 같다. 그 후에 학교에서 비슷한 감정을 겪을 때마다, 내가 선택 한 방법은 '영화관으로 도망치기'였다. 자주 할 수는 없는 방법이었지만, 나는 영악하게 가정통신문을 이용해 치과나 대사관에 가야 한다는 핑계로 엄마의 서명을 위조해 담임 선생님에게 제출하고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학생 할인표는 보통 화요일 낮에 있었는데, 엄마가 싸주신 샌드위치나 김밥 도시락을 들고 교복 위에 카디건 하나 걸치고 아무도 없는 영화관 한가운데 앉아서 그 음식을 먹었다. 어둠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영화관에서 보낸 내 홍콩 생활은 이전에 썼던 아래 글에 더 상세히 나와 있다.


https://brunch.co.kr/@goikirah69/27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이라는 영화에서 이진욱 배우가 연기한 소설가 지망생 '경유'의 대사 중에 '실체를 알고 나면 두려움은 더 이상 크지 않다'는 결의 대사가 있다. 그 시절 내가 겪었던 적응의 아픔이, 당연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였다면, 숨을 쉴 그런 출구가 필요했을까? 영화를 보던 동안의 나는 현실에서의 내 모습을 회피하고 잊어가며 몇 시간은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빙산의 일각을 무시한 결과로써의 더 큰 공허감이 찾아들었다. 그건 1996년에 이미 시작되어 버린 버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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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2025년 9월 5일. 나는 반차를 내고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저녁에는 회사 동료들/친구들과 만나 4차까지 밤을 만끽했다. 화창하게 개인 토요일 나는 지난 3월 출장 때 너무 바빠서 먹지 못했던 딤섬을 먹으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로 향했고, 이어 학생 때 자주 가던 쇼핑몰의 영화관으로 향했다. 총 24시간의 이번 홍콩 일정 가운데 버킷리스트는 이전의 그곳에서 '영화 보기'였다. 나는 더 이상 영화를 보며 현실 도피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힘들 때 내가 지금 있는 곳을 향해 떠난 나의 용기를 칭찬해 주고 싶기는 하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 대는 내게 토닥토닥해 주고 싶기도 하다.


누구는 나를 꿈속에 사는 사람 같다고도 말했고, 누구는 내게 홍콩에서의 이 경험들이 너를 한국 사회에 뿌리 내려 살 수 없게 했다고도 말했다. 나는 꿈을 꾸는 설렘이 사라지면 '죽을 것 같은' 방랑자, 디아스포라, 그리고 외노자의 삶을 살고 있다. 현실감 가지고 사는 것도 중요하고 꿈을 좇는 것도 내게는 동시에 중요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유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 현대 사회의 모든 이는 긴 생애 주기에서 몇 번은 내가 누구인가를 탐구하는 identity crisis를 겪을 것이다. 이제껏 살아온 경험치가 쌓이고, 내가 나를 만나는 경험들이 쌓여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때로는 초연해지는 것은 그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아직도 부단히 가야 할 길 속에서 가끔 찾아가 들여다보면 방부제 도시 마냥 그대로인 홍콩에서의 기억들은 내가 많이 마음을 주어서 그런지, 여전히 내게는 향수를 자아내는 장소 그 자체이다. 내 자아를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내가 모르던 잠재력을 폭발시켜 준 곳.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은 홍콩을 떠나던 시점에서부터 깨달았지만, 그때도 분명, 힘든 순간들은 있었다. 지금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상처받은 순간들의 모습과 버릇을 알고 있다.


어떤 일도, 지나고 나면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포장되듯, 지금 겪고 있는 그 어떤 일들도 무사히 순리대로 흘러가기를. 이타적이되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잊지 않고 매일 오늘 여기를 살아가기를. 그리하여 나중에 오늘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없는 인생이기를 바라 본다. 지금도 진정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나의 진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묻고 있는 내게- 그것은 내가 잘 못 살아온 게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왔던 방증임을 말해 주고 싶다.


나는 기록의 힘을 믿는다. 홍콩에서의 영화표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나. 30년 전이지만 어제 같기도 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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