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지키던 방법
생전 처음 60km 걷기 행사라는 것에 참여했다. 서울보다 조금 더 크다는 싱가포르를 크게 바깥쪽으로 횡단하는 경로였다. 저녁 7시에 모인 나와 회사 동료 몇몇은 든든히 밥을 챙겨 먹고 저녁 8시 반부터 걷기 시작했다. 밤에 걷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날이 너무 무덥기 때문인데, 바닷가를 걷는 경로여서 처음에는 후텁지근하다가, 밤 11시-12시쯤 되니 시원해졌다. 한국에서도 해 본 적 없는 국토 대장정인데,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한 시간에 보통 5km씩을 걸으면서 두 번 짧게 쉬었을 무렵, 허벅지 뒷 근육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7시간째가 되어 나는 장정을 포기하고 동료 1명과 함께 귀가했다. 나머지 두 명은 12시간 만에 60km를 완주했다고 했다. 주최 측에서는 번호표와 인적 사항이 든 QR 코드를 전달해 주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호루라기를 준비하라고 했었다. 총 4번의 체크 포인트마다 참여자들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이렇게 밤새도록 자의로 걷는 경험을 또 어디서 해 볼 수 있을까? 밤에 걷는 길목에서 폭주족들을 봤을 때는 좀 무섭기도 했지만, 함께 걸어서 다행이었다. 폭주족들이라고 하기엔 앳된 친구들이었으나, 전동 오토바이를 전등도 켜지 않고 걷는 그들을 보니 등골이 조금 서늘했다. 나는 이런 순간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싱가포르에 처음 올 때, 동생이 아무 말 없이 호루라기를 하나 사 주며 호신용으로 쓰라고 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이 나라의 치안 수준이 어떤지 몰라서, 주섬 주섬 짐에 넣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처음 몇 달간 경험했던, 그러니까 아직 리콴유 수상이 살아있던 그때는 새벽 한 두시에 길거리를 걸어도 너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지금은 좀 많이 달라졌다. 나는 밤에 잘 걷지 않는다. 공원 산책을 나가도 밤에 문을 닫는 10시가 되면 부리나케 돌아온다. 확률은 낮겠지만, 밤에는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다닐 수도 있다. 일본에서 처음 어학연수를 결심했을 때, 나는 친구와 둘이서 도쿄 중심부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여성 전용 기숙사에서 방을 빌려 같이 살았다. 그곳은 관리자 두 명, 사무실 하나에 방이 여럿 있는, 한국 여성들만 묵던 곳이었다. 휴대폰 없고 방에 전화도 놓여있지 않아서 한국 집에서 전화가 오면 관리자가 스피커로 아무개 씨 나와서 전화받으라고 하던, 지금은 조금 생소할 그런 곳에서, 공용 부엌과 공용 목욕탕을 사용하다 보니 대략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기서 나와 내 친구는 가장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얼굴 생김새의 옆 방 언니가, 본인이 구한 한국어 - 일본어 교환 아르바이트 (그 언니는 나이 지긋한 사람을 만나 식당 등에서 이야기만 하는 에스코트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다)를 가면서 자기 가방에 숨겨둔 아주 날카로워 보이는 가위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내가 화들짝 놀라자 그녀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씩 웃었다. 그러면서 어차피 너는 원조교제 같은 거 하기에는 나이가 많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연수 잘 받고 가라는 거였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렌털 아저씨' 같은 개념이 생겼다고 하니 강산이 여러 번 변한 것 같기는 하다. 돈을 지불하는 주체 또한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대로 변모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성문화를 교과서로만 배웠던 나는, 또 하나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4/12/03/KGLWTYOPTJAVLA7C7A7TPYJG7M/ (렌털 아저씨 참조 뉴스)
당시 기숙사에서 20분 정도는 족히 걸어야 있던 지하철 역 근처에는 비디오/CD 대여점이 있었다. 귀를 틔이게 하려고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하루 10시간씩 드라마나 영화 비디오를 보던 나는 그곳에서 Beautiful life나 愛していると言ってくれ(사랑한다고 말해줘 : 한국에서는 정우성 주연으로 리메이크된 바 있다) 같은 시리즈 물을 열심히 보았다. 말이나 글을 쓸 수 있어도 일본어 청취력이 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는데 보통은 생수 한 병과 식빵 한 봉지, 사전과 노트를 들고 들어가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면서 보았다. 처음에는 자막을 가리고, 두 번째는 자막을 열고, 중간중간 단어를 찾아가면서. 연수의 3개월 동안 제일 잘한 일이 이렇게 일본어를 터득한 것이었다고 자부한다. 내가 주기적으로 비디오 대여점에 가는 걸 알고 어느 날 근처의 방에 살던 왕언니가, 어떤 주연 배우가 나오는 특정 포르노 비디오를 빌려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언니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학원에서 돌아오던 날, 털모자를 쓰고 분홍 코르덴 바지를 입은 나는 태연히 비디오 대여점 일반 코너 옆 노렌(のれん)(일본의 가게 입구에 거는 천으로, 원래는 바람이나 햇빛을 막는 용도였지만 현재는 가게의 간판이자 영업 중임을 알리는 표식- 출처 Google)을 열고 호기롭게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1초의 정적이 흐르며 그 안에 있던 모든 남자 고객들이 나를 응시하는 거였다. 거짓말 안 보태고 모두가 눈빛으로 '너는 왜 여기에 있니?'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역시나, 나는 일본의 AV 시장이 그렇게 크고 보편화되어 있는지 몰랐으므로, 그 모든 경험이 생소하고 충격적이었다. 하기사, 처음 일본에 가서 동호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 도쿄 어딘가에서 남자 두셋이 나에게 속옷 촬영 관심 있냐고 일본어로 말을 걸었던 적이 있다. '저, 외국인인데요' 하니 도망가는 폼으로 보아 별로 적법한 비즈니스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나는 그때 그런 일들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었지만,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언제나 위험의 요소는 도사리고 있었다는 건 이제 돌아보니 알겠다. 원래 어두운 골목을 싫어하니 밝은 길로만 다녔던 게 참 다행이었구나. 결국 최고의 호신술은 36계 줄행랑이고, 가장 좋은 건 그런 환경 속에 들어가지 않는 게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그 안에서 나는 그 언니가 요청한 배우의 비디오테이프 두 종류를 찾아서 빌려왔다.
교환 유학생 시절에도 한두 번은 꼭 밤에 역에서 집에 가는 길에 차를 탄 남자가 쫓아온 적도 있었고, 또래 유학생들 집 베란다에 걸어둔 속옷이 사라진 적도 있었더랬다. 한 친구는 일부러 밤늦게 귀가할 일이 있을 때는 미친 여자처럼 행동하며 길을 걷는다고 했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다. 어릴 때야 불특정다수와 어울리는 경험도 해 볼 때니까 가보지 않은 여러 곳에 갈 수도 있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마음이 내키지 않는 곳에 가지 않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게 나를 지키는 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가장 나 다운 것이 뭔지 알고, 나의 한계를 알기에 나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있다. 사람이 너무 절실하고,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평소에는 절대 가지 않을 곳에 갈 수도 있고,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안 좋은 길로 빠졌음을 빨리 깨닫고 거기에서 돌아 나오면 된다. 아주 늦은 것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것은 삶의 이런 위기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도 안전한 나라는 없다. 하기에 지금 내가 있는 곳을 가장 안전하게 살아 낼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