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냄새 4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by 장서율

주말 아침, 일찍 눈이 떠져 동네에 있는 철길을 따라 산책을 나가 가볍게 만 이 천보 정도를 걸었다. 동네 친구와 커피 한 잔을 하고 헤어져서는 실내 골프 연습장에 가는 길에 또 다른 동네 친구를 만났다. 이런 만남을 보니 내가 싱가포르에 오래 살고 있기는 한가 보다. 1시간 여 열심히 땀 흘리며 180개 정도의 볼을 쳤다. 점심을 먹고, 그동안 별렀던 PT (personal training) 레슨에 가서 체육관에 있는 기구들 8개 정도의 루틴을 돌았다. 강사는 나를 위해 K pop 아이돌 세븐틴의 노래 '손오공'을 틀어주었다. 그녀는 멤버들 중 헬스를 가장 많이 하는 멤버로 알려진 '김민규'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정확히 한국어 발음을 하는 싱가포르 강사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물었다.


'너도 K pop 좋아해?'

'... 나 한국 사람이야.'

'.. 아, 그러고 보니 너 한국 사람처럼 생겼어. 진짜네. 하하하'


운동을 하다가 우리는 실없이 웃었다. 내가 한국인이든 싱가포르인이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그것이 내가 싱가포르에서 좋아하는 익명성이다. 우리는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일 뿐. 그러나 이 행위에 굳이 예전 기억을 끌고 들어오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게 내 문제다.


'나 오늘 아침에 만 이천보 걷고, 골프 연습장 갔다가 여기 운동하러 왔어'

'그게 하루에 다 가능해?'

'응, 어제 잠을 잘 자서 그런가, 오늘은 스쾃도 할당량보다 몇 개 더 할 수 있어'


실제로 나는 체육관에서 무리해서 세트를 더 소화했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게 이상한 도파민이 돌았다. 나중에 올 체력적인 후폭풍이 두렵기도 했지만, 집에 오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무리하려고 하는지. 나는 내가 마음을 준 상대와 이별하고 나면 늘 이런 행동을 취했다. 몸이 힘들어서 정신없이 곯아 떨어질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을 혹사했다. 마음이 아프면 그렇다고 상대에게 말이라도 해 볼 것을 (그 상대는 대부분 이성이다), 좋아했다고 말도 못 하고 끙끙대다가 결국 그 상대가 내 곁에서 떠나가게 되는 걸 참을 수 없어서 나 자신을 몰아붙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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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몇 번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만큼 마음에 들인 사람이 많이 없던 나이기는 했다. 그래서, 시절인연이 다해 마음을 준 상대가 떠나게 될 때, 이런 방식으로 나를 달달 볶았다. (위 글)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 때는 미친 사람처럼 맨발로 러닝 머신을 뛰었던 적도 있고, 하루 15시간씩 걸었던 적도 있었다. 어차피 그런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봤자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잠을 자지 못할 걸 알았기에. 가슴이 아픈 건 용기를 내어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연'의 방향을 좀 바꿔 보자고 제안하지 못했던 것이 제일 컸다.


해외를 다니며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형태의 이별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게 연애 감정일 때 제일 어렵다. 나는 원래 주체 안 될 만큼의 열정이 문제였던 아이였어서, 차라리 그것을 온전히 연애할 때 쓰거나, 커리어를 위해 생산적으로 썼으면 좋았을 걸, 나를 소모하는 데 급급했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영역의 감정들을 어디에 쏟아내야 할지 몰랐던 거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이유를 알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지독한 애정 결핍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엊그제의 이별 장면에서 내가 인정해야만 했던 것은, 세월이 흘렀고 상대는 자신의 길을 찾아갔고, 때문에 지금의 이별이 찾아온 것이라는 시간의 당연한 흐름이었다. 연애 적령기에서 나이는 무한한 유한성을 갖는다. 나는 너무 오래 방황했고, 여러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또 그 사람을 놓쳐버렸다.


이쯤 되면, 나는 내가 나를 이겨 내기 위해 해 온 모든 행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도, 지금 여기 싱가포르에서도 같은 자세로 이별에 대처하면서 상처를 받고 있다면, 나를 위무하는 그 모든 취미가 무슨 소용일까? 나 자신의 단점이야 인정하고 고쳐나가면 되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내 통제 밖의 일이요, 타이밍의 영역이기에 늘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던 나에게는 타인을 배려하고 위한다는 행위가 이질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하는 가슴 아픈 고백이지만, 내가 살았던 홍콩과 일본을 거쳐, 한국, 또 싱가포르에서 만난 모든 연애 상대들을 통틀어, 나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상대가 있었던가? 헤어짐 후에 이런 방식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것은 참 어설픈 대처방식이다. 인생에 원했던 것이 단 하나 사랑이었던 나는 아직도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다.


'네가 진짜 위하는 건 너 자신일까? 아니면 네가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일까?'


이제는 답을 알만한 때도 되지 않았나.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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