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의 추억이란
이번 주 업무 일정의 8할은 동남아시아의 타 국가 2곳에서 이루어졌다. 화요일 아침 이른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는데, 새벽 6시에 일어나 집에서 나서려는 순간 다 싸 둔 짐에 뭔가가 허전해서 서랍을 열어보았더니, 여권이 고스란히 그곳에 있는 게 아닌가. 불러 둔 택시가 도착하기 전에 찾아서 다행이었다. 공항에 가는 길에 이것을 발견했다면 비행기를 놓치는 수도 있었겠다 싶어 등골이 오싹해졌다. 출장은 빛 좋은 개살구다. 아주 간혹 가다가 보상성 출장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동 중간에 생기는 리스크와 갑작스러운 변수, 건강 문제, 비자, 그리고 끝없는 이메일 체크까지 포함하면 그냥 한 군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마음 편할 일이다.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영화를 한 편 보는지, 두 편인지, 아니면 그 이상을 볼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번 출장길에는 '야당'과 '소주 전쟁'을 보았다.
금요일, 내부, 외부 미팅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뒤 팀원들과 가벼운 저녁을 먹고 귀국 편 비행기를 타러 차에 올랐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비가 오는 금요일 저녁의 체증을 간과했고, 설상가상 온라인 체크인을 하기에도 늦어버린 상황에서 20분이면 갈 길을 1시간이 걸려 도착해 버렸다. 비행기 이륙 50분 전, 수속 카운터는 굳게 닫혀 있었고 직원들은 퉁명스러웠다. 나처럼 평소보다 늦게 도착한 승객들이 몇몇 더 있었으나, 한참의 실랑이- 혹은 호소- 끝에 우리는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음 날이 주말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체크아웃한 호텔에 전화를 걸어 하룻밤 더 연장이 가능한지 물었다. 스위트룸밖에 안 남아 있다고 했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 전 나를 내려주고 간 기사에게 연락해 다시 안전한 호텔 방으로 복귀한 순간, 온몸의 힘이 쭉 빠져버렸다. 이런 경험은 웬만하면 하지 않고 - 실제로 두세 번 비행기 예약이 누락되거나 늦잠을 자서, 현장에서 비행기표 구매를 했던 경험은 있다- 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공항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영국인은 그날의 마지막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비자 유효기간도 끝날뿐더러 환승편도 놓친다고 소리쳤지만, 카운터 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비행기가 무슨 버스인 줄 알아? 그러니까 빨리 오지 그랬냐'라고.
그 스위트룸에 자려고 누운 순간 이전의 비슷한 경험들이 떠올라 문득 경건해졌다. 그 모든 변수들을 뚫고 안락한 침대에 누워있는 나 자신의 상황들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일본을 뻔질나게 여행하던 2001년과 2002년 - 어느 날인가는 새파랗게 젊은 여성이 짧은 주기로 일본에 간다며 공항 심사에서 막혀 대사관에 인터뷰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아마도 성매매 원정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잡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소속 대학교와 전공을 확인한 뒤에 보내주었다. 나의 전공은 일본어 문학이었으니까. 여러 항공사를 이용해 일본의 이런저런 도시들을 다니면서 운이 좋으면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되기도 했고, 공항 가는 길에 김포에서 인천 반대방향으로 버스를 타서 비행기 시간 아슬아슬하게 인천에 도착해 부탁받은 면세품을 들고뛰었던 적도, 일본에서 연수 마치고 들어올 때 짐 무게가 오버해서 마지막까지 봐 달라고 사정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건 일본은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정서였다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맞았다. 원칙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 비행기에 수화물을 싣는 것도, 카페에서 1인은 반드시 1인분 이상 주문해야 하는 것도, 공연이 시작되면 입장이 불허되는 것도, 일본이라는 사회는 섬나라답게 그 안에서 조화롭게 사는 게 중시되는 곳이었으므로 - 산악지대가 70%가 넘는 일본 땅에서 마을에서의 추방이라는 형벌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모든 규칙을 정밀하게 만들고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었다. 일본어에는 一人前 (이치닌마에; 즉 1인분의 역할이라는 직역)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나는 이 단어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국민에게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규정짓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1인분의 일을 완수하며 나라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식당에서조차 오토오시(お通し)라는 자릿세를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길 정도로, 어떤 서비스나 권리를 누리기 위해, 그리고 사회의 유지와 조화를 위해 개성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일본 사회였던 것이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에 많은 규칙들이 존재하지만, 그 반대로 사회의 규범에서 한참 벗어나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 은둔형 외톨이)', '도오리마(通り魔: 묻지 마 살인)' 같은 개념도 존재하는 정 반대의 모습을 지닌 사회. 알면 알 수록 놀라웠고, 역사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는 참 재미있어서 일본어 방언 연구를 진로로 하려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다.
일본을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면 알 수록 한국 사회와는 달랐지만, 한국 사회가 일본의 병폐를 닮아가리라는 것을 직감했던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IMF에서 벗어나 고도 성장기로 가면서, 규칙보다는 성과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 결과로써 사회의 조직, 규칙, 그리고 약자들을 위한 제도라든가 안전망의 정비를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닐까. 일본의 인구는 우리보다 훨씬 많고 내수 시장 또한 크다. 정해진 규칙 내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든 어쨌든, 잘 돌아가고 있는 사회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이번 주에 내가 여행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규칙보다는 사회 개개인의 역량에 더 기대는 점이 많은 곳들이었다. 자원은 많지만 정권과 정부는 부패해 있어서, 각개전투를 하는 느낌이 강한 사회. 그곳에서 나는 친절하면서도 사나운 발톱을 감춘 그들의 속내를 보았다. 살아남기 위해,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이들을 보았다. 거지들은 지름길로 가는 길목에서 운전자들에게 통행세를 요구했다. 엄청난 교통 체증을 뚫는 것은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여자와 젊은이들이었다. 겉은 웃고 있지만 지친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과연 나는 이런 사회들의 교차점 속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 걸까?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싶은가?
나만의 규칙을 정해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