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극생비 4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서의 술

by 장서율

한국에서 다녔던 마지막 직장은 매주 월요일 저녁에 회식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방에 나가 있는 PM들이 보고를 위해 출근하는 월요일 저녁 6시부터, 삼겹살에 소주로 시작되는 회식이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술이 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 월요일 저녁에 4차까지 마시는 것은 남은 4일간의 노동 강도를 심화시키는 방법이었다. 왜 그렇게들 술을 마셨을까? 2차는 치맥, 3차는 노래방에 맥주, 4차는 다시 해장을 빙자한 일식집에서의 사케. 그 자리에 참여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를 더 깊이 가져가는 일은 어려웠다. 회사에서는 다들 말을 아끼며 일을 했고, 외향은 외국계였으나 뼛속까지 한국 회사라는 느낌이 강했다.


해외 취업을 하고 나서 부서에는 딱히 회식이라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말레이 중국계인 남자 보스는, 먹는 것에 진심이어서 자주 점심 회식을 했고, 그는 그때마다 10명 가까이 되는 팀원들이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을 주문했다. 아주 가끔은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와인 같은 걸 홀짝이기도 했고, 팀원들과 다 같이 말레이시아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그의 고향 음식들을 먹어보기도 했다. 굉장히 살이 급격히 쪄가는 구간이었다. 그래도 소속감이 생겼고,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배웠고, 혼자서 식사를 한다는 것에 대한 결핍감이 조금 사라졌다. 혼자 먹는 밥은 빨리 삼켜 버리기 일쑤였기에. 얼마나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냐면, 아주 나쁜 습관이라는 걸으면서 먹는 일도 흔했다. 싱가포르는 과일도 조각으로 팔고, 빵도 작은 봉지에 넣어서 길에서 먹을 수 있게 해 준다. 지난주에도 썼지만 봉지 커피를 들고 다닌다. 다만 벌레가 자주 생기는 환경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에는 가지고 탈 수 없다. 당연히 물도 마실 수 없다. 뭔가 먹으면 벌금을 물 수 있단다.


다행히 한 번도 이런 일로 돈을 쓴 일은 없었다. 내가 버는 돈의 일정 %는 술을 사는 데 쓰였다. 처음 이 나라에 와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그 돈의 일정 부분을 어떻게 쓰면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풀릴까 고민했다. 그래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스타벅스나 와인을 파는 곳에 가서 커피 또는 잔으로 와인을 마셨던 것 같다. 호텔에서 파는 하이티 (high tea)에 가서 설탕이 잔뜩 들어간 마카롱이랑 밀가루 덩어리인 스콘에 클로티드 크림을 잔뜩 발라 먹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처음 살던 집주인 아들이 내가 싱가포르에서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에 흑맥주 기네스에서 나오는 1리터짜리 컵을 선물했을 때, 나는 여기서도 술꾼의 이미지로 살고 있나 잠깐 회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슬픔이나 외로움을 달래려고 마시는 술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달콤했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술 가격은 살인적이었다. 게다가 이 술을 팔 수 있는 술집의 라이선스 또한 밤 10시 반까지 파는 곳인지, 12시까지 파는 곳인지, 또 새벽 2시까지 파는 곳인지에 따라 그 가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차피, 관세를 물려야 세관이 돈을 버는 구조라서 수입이나 보관 시에도 엄청나게 꼼꼼히 통관 서류를 챙긴다. 위스키는 40도, 와인은 12-15도, 그리고 백주는 50도가 넘는데, 싱가포르 정부는 도수에 따라 일관되게 세금을 매기므로, 당연히 ABV (Alochol by volume : 알코올도수를 세는 단위)를 정확히 신고하지 않으면 많은 벌금을 낼 수 있다.


이 모든 사실을 감내하고서라도, 한국에서 살 때는 이마트에서 파는 2만 원 이하 와인만 보던 나도 이제는 싱가포르 내에서 되도록 싸게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름의 취향이 생겼고 같이 와인을 즐기는 친구들이 늘어났기에, 예전처럼 술을 마시기 위해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같은 폭음을 하는 날이 있어도 길고 깊은 대화를 하며 마신 것과 술만 주야장천 마시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후자는 남는 것이 없는 소모전이고 전자는 그래도 마음이 위로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지만 더 건강하게 마시기 위해서 지금은 더 많이 운동을 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술, 은 이제 젊은 세대에게는 그렇게 큰 어필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주류회사들은 술이 예전처럼 팔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를 비롯한 소비자들은 점점 더 자신이 돈을 쓰는 취미 생활에 똑똑해지는 것이다. 산지에서 직접 술을 구매하는 루트로 공동 구매를 한다던가, 집에서 소비하기 위해서 술을 도매상에서 구매한다던가. 나는 싱가포르에서 정말 비싼 곳도 지인 찬스로 가 보았고, 집 안에 거대한 와인셀러가 있는 곳도 보았고, 한 병에 50만 원이 넘는 술도 감사한 분들 덕분에 맛보았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나를 달래는 술은 마음이 편안한 어느 날 저녁에 좋은 음악과 곁들이는 술 한잔인 것 같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싱가포르에 와서 여러 집을 전전하며 방 한 칸짜리 생활을 하던 내게, 조용한 술 한잔은 오랜 시간이 걸려 획득한 감사한 취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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