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극생비 5

풍수의 나라 싱가포르

by 장서율

CNY, 그러니까 Chinese New Year의 준말인 구정(설날) 기간은 싱가포르 풍수 업계의 최대 호황이다. 이 나라에는 주역/풍수/기문둔갑을 봐주는 협회가 4개인가 있고, 그 협회에서 매년 12 지지 띠에 각각, 나쁜 것을 막아주고 좋은 기운을 북돋아 준다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판매하기도 한다. 주로 호안석 같은 준보석 팔찌나 수정 원석, 호롱박 모양 (이건 귀인의 반대말인 '소인'의 출현을 막아준다고 한다)으로 된 부적, 돈을 가져다준다는 엽전이 여러 개 달린 장식 등 그 종류와 가격이 참으로 다양하다. 사주명리학에서 매년 각각의 띠마다 좋은 별 (길성)과 그 반대의 것, 길방과 그렇지 못한 방향이 바뀌므로 큰 쇼핑몰에 가면 그 해의 총운을 적어 장식해 두는 것이, 열대의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바로 찾아드는 CNY의 풍경이다. 거리는 중국 문화에서 길함을 나타내는 붉은색으로 장식되고, 돈의 발복을 뜻하는 '发啊' (huat -ah)라는 말을 여러 장소에서 들을 수 있다.


각 쇼핑몰마다 12지지 별로 그 해의 총운을 해석해 둔 것이 CNY의 풍경이다 . 2026년 나도 발복해보자!



또, 이 기간에는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귀성길에 오르는 것처럼, 이 나라 사람들은 가족들이 새해 전 날 모이는 Reunion dinner를 위해서, 워킹맘들은 연차까지 써가면서 음식을 준비한다. 싱가포르에서는 화교 인구의 점유율이 제일 크지만,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기에 구정 연휴는 이틀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저녁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전복인데, 이는 鲍鱼(bàoyú)라는 단어의 음절이 풍요를 약속한다는 뜻과 비슷해서라고 한다. 파인애플 타르트를 만들어 먹는 것도, 이 단어를 지칭하는 黄梨(Huang li)가 중국어의 황금과 닮아있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 음식 하나하나에 신경을 쏟는 것은 곧, 다가오는 새해에 가족들이 안녕하고 발복 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싱가포르의 역사는 갓 60년일 만큼 짧고,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할 당시 어려운 경제 시기를 겪어온 개발도상국의 아픔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이런 '발복을 비는' 관습에 더 기대었을 수 있다. 결혼하고 성인이 되면 받을 수 없다는 Hong Bao (红包)라고 불리는 빨간 세뱃돈 봉투에 빳빳한 2달러 자리 지폐를 차곡차곡 넣는 마음 (그것마저도 단위 끝자리를 중국인들이 제일 길하다고 생각하는 숫자 8에 맞춘다) 새해를 맞아 방문하는 친지들을 위해 마련하는 오렌지 (오렌지를 이 나라 사투리로 '깜'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곧 금과 같은 말이다). 한국에서 조상님들께 가족들이 모여 인사를 올리는 차례상과, 거기에 따르는 떡국을 정갈하게 준비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길을 가다 흔히 보이는 오렌지와 파인애플의 숨은 뜻. 대길을 비는 마음.

이렇게 풍수와 구정의 관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또다시 이곳에서의 구정이 다가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래 살다 보니 눈에 띄는 가게나 음식점들에 풍수지리를 고려한 배치가 눈에 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13년 간의 구정 동안 사람들이 내게 해 준 이야기는 유일하게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 이틀이기에 미리 장을 봐 두라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한국인만큼 먹는 음식에 많은 공을 들이고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음식점들이 이곳에 존재한다. 혼자서 전을 지지는 날도 있었고, 친구집에 모여 떡국을 먹는 날도 있었고, 싱가포르 식으로 양손에 오렌지를 들고 고객사를 찾아가 운수 대통하시라고 '大吉大利'를 외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렇게 외롭게만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 감사한 나날들이었다. 주역, 사주명리학, 길방 등을 고려하는 학문분야를 통틀어 여기서는 '풍수 (Feng shui)'라고 여기서 부르는데, 기의 흐름을 고려한 물건의 배치라는 뜻이란다. 사주 명리는 사주팔자의 '팔자'를 따서 八字(Ba Zi )라고 부른다.


우선 풍수적인 것들을 보면, 유명한 건물의 한가운데에 용이 승천할 때 지나가라고 구멍을 뚫어둔다거나, 업소 입구에 물이 순환하는 용이나 연꽃 모양 분수를 배치하는 것, 기운을 맑게 해 주는 자수정, 돈을 불러온다는 비휴 (금두꺼비처럼 생겼다), 거기에다 손님들이 많이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일본식 마네키네코(招き猫)까지 다양하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들에는 초록색, 둥근 나무살로 이뤄진 조명, 주방의 위치 (불을 상징한다) 및 기타 소품들까지 풍수를 따져 만든 모양새이다. 풍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싱가포르에 오기 몇 년 전, 내 삶이 힘들어서 사주명리학 공부를 조금씩 하러 문화센터에 다닐 때부터였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이곳의 거의 모든 업장들은 풍수 관련한 컨설팅 업체에 의뢰하고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 것 같다. 그만큼 돈을 많이 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혹독한 환경이기에 그랬을까. 싱가포르의 현재 물가는 살인적이고 그것은 외국인 현지인 막론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내 명함에 적힌 직함보다, 내가 얼마만큼 세금을 내는 사람인지, 어느 레벨의 콘도미니엄(한국에서는 아파트의 개념)에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지가 더 명확한 클래스를 나타낸다. 좋은 입지에 시설 좋은 콘도미니엄 30-40평대는 세가 월 천만원 넘는 곳도 많으니까. 그래서인지 싱가포르 현지인들은 절대로 본인이 손해 볼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일하다가 실수하는 것조차도 본인이 금전적인 손해를 일으킬까 봐서, 혹은 평판의 이유로,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여기서는 'Kiasu(驚輸)'라고 하는데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주팔자, 즉 八字(Ba Zi )를 보러 용하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문화도 한국과 비슷하다. 연말연시에 새해 사주를 보고, 그 해에 자신에게 나쁘다는 기운의 액막이를 해 줄 새로운 준보석 팔찌를 맞춘다던가, 그 해에 사업상 도화가 필요하다면 분홍색 크리스털 목걸이를 하고 나타난다. 새해 첫날에 돈을 인출하면 돈이 나간다며 일부러 ATM기에 돈을 입금하기도 하고, 새해 첫 2주일 간은 사람들과 싸우면 안 된다며 마음을 새롭게 다져나가기도 한다. 사실 정도의 세기는 좀 있지만, 그 마음가짐만은 소중히 여겨야 할 것 같다. 묵은 한 해를 보내면서 새해 첫날 전에 하는 대청소 - 여기서는 그것을 spring cleaning이라고 부른다 - , 새해에는 정갈한 마음으로 복을 맞자는 발복의 마음 모두 풍수/사주적 측면에서 '비우고 복을 받는' 이성적인 흐름이다. 그래서 이 기간에 싱가포르 사람들은 매우 바쁘다. 친지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뿐인가. 식당들마다 CNY 스페셜 정식이 나올 정도로 모임이 많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회적 습관들이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사라져 가는, 뭐랄까 점점 더 각박해져 가는 모습 속에서 싱가포르의 왁자지껄한 CNY가 언젠가는 그리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만 해도, 새해라고 가족 단위로 함께 인사하러 가는 집들이 줄어들었다. 설령 어쩌다 혼자서 새해를 맞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마음 터놓을 누군가가 있어 아주 외롭지 않은 설날이 찾아오기를. 세밑이 어둡고 추워서 나쁜 생각이 든다면 잠깐 멈춰서서 내 자신이 있어야 세상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한 번 해 보기를 바래본다. 이렇게 심지가 굳어진 마음이 있으면, 혼자여도 그렇게 외롭지 않으니까. 사람사는 건 어디든 비슷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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