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황정민, 이정재 주연의 누아르/액션 영화인 줄만 알고 팝콘 들고 명랑하게 영화관에 입장했다가 '어랏?' 싶었다. 10년 전에 한국에서 본 영화 '어둠의 아이들 (2010)'이 떠오르는 플롯이었다. 옆 자리 친구는 방금 전까지 해맑은 조카 사진을 보여주며 이쁘다~ 했던 터라 더 무섭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눈도 얼굴도 너무 예쁜 박소이 배우. 이 아이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은 동남아시아에서는 매우 안전한 편이지만, 불과 몇 년 전에도 탑차로 아이들을 납치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가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 5명이 탑차 안에 설치된 작은 닭장 우리 같은 곳 안에 묶여서 스펀지 공 같은 걸 입에 물고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고 한다. 그때 SNS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사진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사람을 동물 취급한 모양새였다.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은 천운이었고 트럭은 중국인 소유였다고 했다. 그 당시 구조된 아이들 몇 명은 충격(PTSD)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영화 속의 유민도 마찬가지다. 이 예쁜 어린 배우 (박소이 분)의 말간 눈이 참 아프다. 여기서조차도 어린아이 납치는 '~카더라' 수준으로 소문이 돈다. 유괴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고 한다. 납치 즉시 부모가 못 알아보도록 머리를 깎고 옷을 갈아입혀 국경 너머로 사라진다는 무서운 수법은 양육 아니면 장기 밀매 이런 게 목적일 수도 있으리라.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동남아시아 경찰/인터폴에는 Korean desk (한국인 전담반)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액션물이지만 이런 영화가 또 나왔다는 건, 그리고 10년 전에도 나왔다는 건 그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겠지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 친구를 만나러 간 방콕은 내게 마사지받고 쇼핑하러 놀러 다니던 곳이었는데 철없던 내가 부끄럽다. 그 수많은 밤의 클럽들 앞에서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친구들이 같이 들어가 보자고 해도 너무 무서웠거든. 내게 아이가 없다는 게 불행일까 다행일까. 자기 아이를 위해 장기 밀매의 매수자가 되는 부모를 욕할 수 있을까.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 뭐라고 못하겠다. 이렇게 해외에 나와 있으면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를 상대로 하는 장사가 많다. 우리 고유의 문화 때문일 거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마음먹고 누군가에게 사기 치려고 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많다. 그중 가장 큰 동포들의 허점은 '외로움', 그리고 '돈' 일 거다. 그 상대방이 돈이 많든 적든,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이용당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몇 년 전의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인생 수업에 많은 돈과 눈물을 낭비했다.
방콕의 흔한 밤 풍경.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을까.
10년 전 단지 일본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좋아서 봤던 영화 '어둠의 아이들'은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했다. 그 영화를 보던 당시의 느낌이나 영화 전반적인 톤이 꼭 안개에 싸인 것 같았다. 당시의 츠마부키 인터뷰 몇 개를 찾아보니 '꼭 세상에 나와야 할 영화'라고 생각했단다. 방콕에 처음 놀러 가 보고 놀란 사실은 태국 방콕에 거주하는 일본인만 5만 명이라는 것과, 시내 한 복판에 일본과의 '우정의 다리' 같은 구조물이 하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분명히 태국에서도 일본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나? 하긴 몇 년 전 미얀마인 동료가 그랬다. 전쟁 때 하도 많은 군인들이 강간을 해서 일본인 혼혈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불과 몇십 년 만에 그런 것들을 다 잊고 저런 걸 구축할 수 있나? 새삼 자본력이 자본주의에서는 최고구나 생각했다. 베트남에 가도 그럴까. 씁쓸하다. 한편으로는, 그런 외자 유입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인 나라였나 싶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태국, 그리고 대만 등이 왜색이 짙다. 문화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고 일식도 사랑받는다. 여기도 알짜배기 시내 땅에는 어김없이 일본 자본이 잠식하고 있다. 똑똑한 민족이다. 한국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참 다르다.스시를 모르는 외국인은 없어도 김밥을 모르는 사람은 참 많다.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간하는 김밥은 す(스는 식초다) 를 넣는 마키나 스시랑은 다르다고 설명을 해도 잘 납득하지 못한다. 익숙하지 않으니까. 고유한 건 한국사람들끼리만 알고 마는 게 아쉽다.
사진기사로 방콕에 따라갔다가 새로운 사실에 직면하는 난부 역 츠마부키.
한국인은 해외 나와도 잘 뭉쳐 살고 우리만의 커뮤니티를 만든다. 몇 년 그렇게 같이 지내다 보면 가족보다 가까워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진짜 가족은 없다. '가족 같은' 이 있을 뿐이다. 그냥 자주 어울리다 보면 익숙해지고 가까워진다. '같은 해외 땅에 사는' 공통점 그 하나 때문이다. 해외에 산다는 것은 벼슬이 아니다. 내가 원래 살아야 할 곳에서 나는 좀 다른 것 같아서, 혹은 뭔가가 싫어서, 실패해서, 해외에 나온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8년 동안 나는 많은 동포 친구들을 주변에 두었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이별의 아픔에 익숙해졌다. 이제 나는 제일 무서운 것이 이렇게 혼자 있는 게 무엇보다도 편해질까 봐 그게 제일 두려울 정도다. 지금이야 아직 젊으니 괜찮겠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에 혼자 타시기 힘들 정도로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저게 나의 미래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돈을 벌고 저축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 속 최고의 빌런. 이런 얼굴로 우리 속에 숨어 살겠지.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건, 본인의 의지는 아니지만,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는데, 그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다만..'에 등장하는 인남(황정민) 은 존재를 몰랐던 딸아이 '유민 (박소이 분) '의 납치 사실을 듣고 거의 포기한 인생을 다시 살고자 한다. 레이 (이정재 분)는 청부살인으로 자신의 형을 살해한 인남의 주변 인물들을 싹 훑어가며 (손보며) 그를 압박한다. 유이 (박정민 분) 은 영화 최고의 수혜자이자 히로인이다. 그의 등장으로 영화의 흐름이 바뀐다. 자신의 아이덴티티 때문에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살던 그에게 유민을 만난 건 인생의 판을 뒤바꾼 모험이 되어 버린다. 한바탕 칼춤이 끝나고 나서 남는 건 '왜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물음이다. 누아르는 끝나고 나면 으레 좀 헛헛하고 허전하기 마련이다.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 이정재의 패션 센스. 완벽한 몸매.
선도 악도 우리 안에 있다. 선을 행하며 사는 성녀는 되지 못해도 남에게 악을 끼치며 살지 않으면 선방한다는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주변에 폐가 안 되려면 내 한 몸 건사하자는 생각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더 절실히 느끼게 된 건 이런 생각이 없이 때 묻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조건 없이 주어지는 친절함에 대한 감사함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던 젊은 날에는 그런 타인에의 '선함'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몰랐다. 어두운 곳으로 가지 말라는 조언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통해 나오는 말들인지 몰랐다. 내 형편에서 조금씩 갚아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김치를 담가 선물로 드렸던 그분은 참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분에게 감사한다. 또 어린 날의 내게 이런 참담한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해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한다. 해외 나와 살면 다 효자 된다고 하더니만 자기 고집에 뻗대던 나도 이제야 좀 숙여지나 보다. 영화관에서 나오는 길에 학창 시절 홍콩에서 자주 사 먹던 에그타르트 집이 신장개업 한 걸 보고 줄지어 서서 하나 입에 넣었다. 세상 행복한 달콤함, 저 멀리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와 내 동생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노스탤지어. 그 녀석도 학교 가던 길 언덕 위에 있던 그 타르트 집을 기억하더라. 20년쯤 지나면 지금의 우리가 영화를 보던 이 순간도 한 없이 그리운 추억으로 남겨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