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미나리

당신은 어디에서 자라고 있나요?

by 장서율

미나리는 여러해살이 풀로 독소 배출에 좋으며, 김치에 넣어먹어도 되고 생으로 먹어도 되고, 또 국이나 탕에 넣어먹어도 된다고 나와있다. 물 근처에서 자라서 수근 (水芹)이라고 부르나 보다. 해물탕이나 매운 수제비 먹을 때 그 위에 넣어서 고춧가루 얹어 팔팔 끓여먹고 싶은 채소다. 내가 사는 곳에는 비슷한 식물은 없고, watercress (물냉이)라는 채소가 종종 '불도장'의 간체 버전 같은 국에 올라간다. 여기 사람들은 연근이나 무, 당근, 돼지갈비, 검은콩 같은 걸 넣어서 푹 고은 국에 물냉이를 넣어 먹는다. 이 나라에 산 지 어언 8년, 여권을 다시 갱신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처음에 나는 그런 현지 음식들만을 먹으면서 6개월을 버텼다. 선풍기만 놓여있는 음식이 저렴한 로컬 푸드 코드에서, 남아 있는 음식들을 쪼아 먹는 검은 새들을 구경하며, 더럽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허기가 먼저 들었다. 그때 내가 밥을 먹으면서 흘린 게 땀인지 눈물인지, 아직도 감이 잘 안 서지만, 기름진 것들을 먹다 보니 한 달에 체중에 1킬로그램씩 불어났고, 6개월 차에 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풍선처럼 불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현지 음식 먹기를 멈췄다. 현지 친구들이 아니면 이제는 엔간하면, 한식을 먹는다. 하지만 그때 늘어난 몸무게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봐도 안 빠진다. 해외에 나와서 살려면 붙어야 하는 넉살처럼, 갑옷처럼, 철판처럼, 그렇게 내 몸에서 이젠 떼어내기 힘들다. (나잇살... 이라기엔 그냥 핑계 인지도. 술도 그만큼 마시면서 버텼겠지)


코로나로 1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수면 건강이 엉망이 되어가고 덩달아 나의 신체 리듬도 많이 깨졌다. 얼마 전 사내 교육을 받으러 만난 동료 몇 명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며 새벽 네 시 넘어 자는 게 일상이 되었다고 하더라. 주말이 되어 편히 자 보려고 해도 아침 9시에는 눈이 떠진다. (싫고 졸려도 일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다). 빈둥거리다가 요가 시간을 맞춰 나서다가 빠듯해서 택시에 올랐다. 평소 같으면 10분 안에 갈 길을 도로 공사로 30분 가까이 걸려서 수업도 허탕 치고, 이 참에 영화나 봐야지 하고 근처 영화관에 갔더니 영화 '미나리'를 상영하는 거였다. 그런데, 상영 시간이 15분 전에 시작해버렸고, 다음 영화는 밤 9시 반이다. 참 타이밍 한 번 안 맞는 하루라고 생각하면서도 영화 티켓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오는 길에 혼자 페디큐어도 받아보고, 생필품 쇼핑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보니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라. 밥 먹는 사이클도 엉망이 되었구나. 헛헛한 마음에 장 봐 둔 김밥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밥도 넉넉히 해서 혼자 열심히 김밥을 말았다. 한 줄 말고 꽁지만 썰어서 입으로 털어 넣고, 를 반복하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20210227_183027.jpg 김밥은 준비만 엄청 오래 걸린다.. 냉장고에 고구마가 남았길래 밥 속으로 풍덩.


20210227_190322.jpg 남은 김밥은 계란물 입혀 지져 먹어도 되고, 썰어서 볶음밥으로 만들어 먹어도 된다.

해외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으며 유명해진 영화 '미나리'. 한국 채소 이름을 그대로 쓴 게 인상적이었다. 1970년대 결혼한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는 (스티브 연, 한예리 분) 한국에서의 삶이 힘들어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세대다.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과, 열 살 갓 넘은 듯한 딸 남매를 키우는 둘은 캘리포니아에서 막 아칸소 농장으로 이사를 왔다. 말이 농장이지 집은 바퀴가 달린 이동식 목조 가옥이었다. 무슨 연유에선가 제이콥은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어 한국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고 싶어 한다. 부부는 생업으로 닭의 부화를 위한 선별 작업을 하고 있지만, 제이콥이 훨씬 많은 애정과 시간을 쏟는 일은 채소를 재배하는 일이다. 이웃인 폴에게 트랙터를 빌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지하수를 끌어와 물을 댄다. 모니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들의 부재중에 아이들을 돌봐 주기 위해 한국에서 어머니를 모셔온다. 바로 우리의 윤여정 배우님. 이 '할머니'에게서 나는 'Korean smell (한국의 냄새)'를 불평하던 데이비드 (아들) 은 어느새 그녀와 함께 화투를 배워 친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고춧가루와, 잔멸치와, 반찬들과, 자신이 심을 미나리 씨앗을 챙겨 온다. 그 광경을 본 로컬 관객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다. 지금은 영화의 배경보다 40년이나 지난 시점이고, 현지에는 한국 음식 열풍으로 여전히 한국 마트가 성업 중이며, 솔직히 말해 돈만 주면 못 구할 한국 재료가 거의 없는 시점이다. (나는 한국산 시금치와 깻잎, 어묵, 단무지, 우엉, 김을 이용해 김밥을 말았다. 하다못해 참기름에 참깨까지도 다 국산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온 고춧가루는 너무 반갑다. 그건 그냥 식재료가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잊고 살았던 고향의 단면 같은 거다. 나의 어린 시절 당연히 옆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추억들처럼, 할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 엄마가 담가주던 김치처럼. 해외라는 곳에서 사는 동안 해외 교포들은 늘 헛헛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음식은 그런 노스탤지어를 달래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고, 그 원재료인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려는 제이콥의 마음은 척박한 땅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 보려는 의지를 보여줌에 다름 아니다.


농사는 녹록지 않고, 거래처도 말을 바꾸고, 설상가상 지하수도 말라버린다. 제이콥은 수돗물을 끌어 쓰다가 결국 단수까지 돼버린다. 할머니가 심은 미나리가 있는 개울가에서 이들은 물을 길어온다. 할머니가 미나리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며 '원더풀 미나리'라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어디서고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하는 누구나 차별 없이 따먹을 수 있으며, 심지어 날로 먹어도 익혀 먹어도 몸에 좋은 채소. 외로울 때 내가 먹고 견디는 기억 속의 맛있는 추억들 같다. 그 번거로운 김밥 재료를 무려 1시간에 걸쳐 준비해서, 김밥 말아먹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나는 요리 속에서 몰입을 발견하고, 즐거움을 느낀다. 힘들고 외롭다는 사실을 잊는다. 김밥을 말고 싶다는 생각은 내가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름 준비 시간 15분 이상 걸리는 음식은 김치 말고 잘 안 만드니까.


가족은 여전히 참, 같이 있으면 힘들고 떨어지면 그리운 존재인가. 제이콥과 모니카가 느꼈을 삶의 무게, 할머니의 등장으로 잊지 못할 유년 생활을 맞게 된 남매.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은 용기였을까, 믿음이었을까.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웃 폴은 모니카가 믿는 하늘이 보내주신 수호천사였을까. 영화는 잔잔히 흐르고 흘러, 미나리가 잘 자란 개울가에서 멈춘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이들의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었다. 80년대에 매년 미국에 건너간 이들은 연간 3만 명이라고 한다. 내 아버지의 바로 아래 동생, 그러니까 내 작은 아버지도 그분들 중 한 분이었다. 연유는 잘 모르지만 작은 어머니 가족은 이미 모두 이민을 가 있는 상태였다고 하셨다. 작은 아버지의 가족은 거의 10년에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카카오톡으로 사진이며 이야기를 주고받곤 하고 있다. 5년 전 미국에 갔을 때 느낀 거지만, 작은 아버지는 하루 종일 한국 방송을 보시고, 매일 한식을 드셨다. 새벽이면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날 붙잡고 이야기하자면서 커피를 만들어 주셨다. 나도 해외서 살고 있는 조카이고, 자주 만날 수 없어 반가운 거였을까. 그냥 가족은 그런 것 같다. 동남아시아보다는 더 힘들 미국에서 작은 아버지 내외분과 조카들, 그 아들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본다.


아, 영화에 한참 빠져 있다가 나오는 길에, 영화관이 있는 쇼핑몰 탈출기를 잠시 적는다. 영화관은 쇼핑몰 5층 멀티 플렉스인데,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가세요 라는 말을 믿고 내려왔더니, 출입구는 모두 닫혀있다. 나처럼 우왕좌왕하는 사람 몇몇이랑 지하로 내려와 보니, 여전히 출구는 모두 닫혀있다. 결국 그중 식당가 직원 한 명과 나만 주차장으로 내려가 에둘러 걸어 올라오는 길에, 영어가 서툰 그 사람이 나에게 물어본다.


'너 어디서 일해?'?

'나? 영화 봤는데'

'지금 이 시간에? 혼자? 친구 없어?'

'... 문제없잖아'

'뭐가?'

'영화 혼자 보는 거, 문제없잖아. 그게 뭐 어때서?' (살짝 열 받으니 술술 나오는 생존 중국어)

'아, 나는 무서워서 혼자 영화 못 봐, 거기다 이 시간에..'

'아 그렇구나....'

'너 인턴이야? 일하러 왔어? 어디서 왔는데?'

'.... 한국..'


조심해 가라는 인사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쇼핑몰은 닫혀있어도, 영화관 옆 인형 뽑기 기계에서는 한국어가 계속 반복되어 나오고 있더라. 음식도 채소도 과일도, 이제는 기계도 다 수입하나 보다. 극장에서는 한국 영화를 사시사철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지금 이 곳은 어디일까? 나는 잘 뿌리내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미나리처럼 어디 갔다 놔도 잘 사는 그런 인간인 걸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더 익숙한 나는, 어디에서 살면 덜 외로울까? 결국 모든 마음은 내가 먹기 나름인데. 푸릇푸릇 쌉싸름한 미나리 가득 얹은 해물탕에 소주 한 잔, 가족이랑 먹고 싶은 밤이다.



20210227_232931.jpg

아무도 없는 쇼핑몰에서 한국어로 계속 '꿈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형 뽑기 기계. 괴괴하다.

이전 02화나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