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I only want you to love me
한국어 제목 : 너희가 나를 사랑하기만을
Ich Will Doch Nur, Dass Ihr Mich Liebt, I Only Want You To Love Me, 1976
독일 영화 중에 파니 핑크 (2007)을 재미있게 봤었다면, 그 이후로 기억에 남았던 독일 영화는 모두, 이전 회사의 동료였던 독일인 테레사를 따라 현지의 독일 문화원 (Goethe Institute)에서 봤던 것들이었다. 다국적인들이 모여사는 도시인만큼, 독일 영화제, 프랑스 영화제, 등이 심심찮게 있는데, 또 다른 독일 영화 'Head full of honey' 외에 기억에 오래 남은 영화에 대한 포스팅을 해 보고자 한다. 제목은 'I only want you to love me' 내가 직역해 보자면 제목은 '나는 네가 나만를 사랑해 주기만, 을 바래' 정도가 될 것이다.
2015년의 나는 사랑에 빠져 있었다. 사랑에 빠져서 상대도, 세상도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광분했고, 그 감정에 빠져 허우적댔고, 밝은 장밋빛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멋대로 기대하고 기뻐했다. 테레사가 소개해 준 영화관에서 파스빈더의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파스빈더의 영화를 처음 알았던 건, 좋아하는 밴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 씨의 두 번째 솔로 앨범 수록곡 중에 있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노래를 통해서였다.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 가운데 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기에 네이버의 영화 소개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런데 국내 개봉이 되지 않은 사실을 보고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매우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채로운 영화와 함께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해외 생활인 듯하다.
주인공 페터는 나름 나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정서적인 학대를 받았다. 부모는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동네 처녀와 자연스럽게 동침을 하고, 그녀와 함께 도시로 나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어 보였다. 도시의 발전기에 필요한 건축 현장에서 일하게 된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가구 등을 구입할 때, 월급 명세서를 가지고 가면 수개월 할부로 구매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받을 줄도, 제대로 된 감정을 느끼지도, 또 줄 줄도 몰랐던 페터는 돈을 위해 건강을 해칠 정도의 야근을 하고, 마치 갑부처럼 아내를 위해 많은 가구들을 사들인다. 아이를 임신한 아내는 이미 집이 꽉 찰 정도의 가구를 안고 있고, 그들의 집은 행복하기보다는 갑갑해 보인다. 페터는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일이 잘 안 될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장면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몸이 안 좋아지고 내면마저도 무너지는 페터는, 그렇게 건축 현장에서도 일자리를 잃고, 그가 할부로 결제한 물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아침에 아내가 싸주는 샌드위치를 들고 일자리로 향하지만, 그는 기차나 벤치 등에서 헤매기 마련이다. 결국, 페터는 어느 음식점에서,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주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는 멀쩡하게 태어난 한 남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의식주를 주었으되 아이가 필요한 관심을,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은 부모로 인하여, 어떻게 세상에 부적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페터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아이가 태어나서 사랑을 처음 배우는 존재는 부모인데, 그런 부모에게서 올바른 애착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아예 부모의 존재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애정결핍, 혹은 집착을 보이기 마련이다. 부서진 부모들에게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만, 사랑을 배우지 못한 것은 참으로 큰 결점일 수밖에 없는 게 마음 아프다. 가정에서 아이가 배울 것은 사랑이란 것이 조건 없이 주고받는 연습을 통해 익혀지는 것이며, 내가 나인 존재만으로 기쁨이 되는 환경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과정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면 자라나면서 너무나 힘이 든다.
세상은 각박하고, 사람은 서로의 이득을 위해 만나고, 조건 없는 사랑이란 건 타인들끼리 하기에는 너무나 힘들다. 페터에게 사랑은 조건 없이 한 대상 (아내)을 위해 희생하는 자신이었으며, 때문에 영화의 제목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만을 사랑해 주길 바란'다는 것었다. 페터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었으나,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마음이 아픈 아이 었을 따름이다. 그가 죽인 건 안타깝지만 음식점의 주인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감히 그러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었을, 자신을 은연중에 정서적으로 무시하고 학대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한계를 딛고 행복에 다다르려 했던 페터의 사랑은 그렇게, 안타깝게 막을 내리며, 담배 연기에 위스키가 어울릴 것 같은 씁쓸한 결말을 남긴다.
요즘의 나는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과거의 인연 속 기억들이 가끔씩 밤에 찾아와 나를 짓누를 때, 나는 어떤 형태로 사랑을 해왔는지, 내가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만큼 상대를 받아들이려고 했는지, 어떤 이유로 실패를 거듭해 왔었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페터와 같이 나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나는 진짜 내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에 미숙했다. 정작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감사해할 줄 몰랐다.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 자신이 없는 상태로 그들에게 기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가장 큰 바람은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용만 당하고, 또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는 관계가 대부분이었던 듯하다. 지금의 깨달음을, 이 영화를 보았던 2015년에도 알 수 있었다면, 삶에 대한 태도가 '될 대로 돼라'가 아닌 좀 더 정중했다면,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보게 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