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의 승화

그리고 '만추'

by 장서율

*2017년 영화 칼럼으로 발행한 글을 각색했음을 밝힙니다*


그날 하루는 이상했다.


쉽다고 생각했던 일들과 친절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괴리감을 느끼고, 즐겁게 달려 나가던 약속 길에서 알지 못할 매캐함과 피곤함을 느끼고, 지쳐 올라탄 택시에서 20여 년 전 즐겨 듣던 노래를 들었다. 지친 마음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라는 곡으로, 나름 J –pop이 유명했던 90년대 말에 획기적으로 등장했던 '그 시절' 어느 고교생 가수의 노래다. 이 노래를 안다고 택시 기사에게 이야기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자 기사는 신나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위로받았던 건 화자와 청자 둘 다 인 것 같다. 그는 우리 회사 가는 길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수원 가는 길일까. 바다에 면한 길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우리 회사 가는 길) 이 자기가 어렸을 때 자전거 타던 길이라며 자신이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의 사춘기를 잠깐 생각해 보고, 곧이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she was a great singer, but she married too young’ 말하고 나서 아차 했다. 뭐지. 결혼은 소녀의 삶의 끝이고 여성의 삶의 시작이란 얘긴가. 그녀가 결혼에 실패한 건 너무 일찍 상대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건가. 알 수 없는 생각의 반동. 걷잡을 수가 없다. 나의 편견이 싫다.


결혼은 끝을 알 수 없는 항해인 것 같다. 근데 아이러니한 건 거기까지 가기도 알 수 없는 항해라는 거다. 나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시인의 감성으로 돌아오는 나는 언제가 잡아먹고 먹히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 하지만 거기에 잠식당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내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그것들을 붙잡는다. 그것들은 상상의 나래이고, 나만의 생각이고, 감성을 건드리는 것들이다.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해 보여도 나에게 있어서는 삶을 바라보는 망원경을 조립하는데 필요한 조각들이다. ‘first love’라는 노래를 들으며 열심히 기분이 좋아지는 , 그러나 아련한 그 영화를 생각해본다.


영화 ‘색, 계’로 데뷔 여러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는 중국 출신 여배우 탕웨이가, 한국인 남편인 김태용 감독을 만난 영화 ‘만추’. 리메이크 작이라지만 나는 전작을 모른다. 그저, 훈 (현빈 분)이라는 여러 여자들에게 기생(?)하며 살던 남자와, 첫사랑과 남편에게 모두 배신당한 애나 (탕웨이 분)가 만나 애닮프고 또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 같은 사랑을 나누는 영화다. 천상 '여자'인 애나는 첫사랑, 그리고 또다시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그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에 복역하다가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잠시 출소한다. 그리고 훈은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길에 애나에게 차비를 빌리게 된다. 길 가다 만난 철저한 타인 둘은 그 안에서 소통하게 된다. 때로는 가족이 아닌 타인이 가장 친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많이 상처 받고 외로워 본 사람들은 알지도 모르겠다.


늦가을 정취와 쓸쓸한 시애틀의 날씨, 그리고 아무렇게나 머리를 틀어 올리고 화장기 없이 웃어도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탕웨이의 표정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영화를 본지 십 년이 넘었어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녀의 표정들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고, 사람에게 다시 치유받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사랑을 깨달았을 때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모친상에서 자신에게 상처 준 첫사랑 남자를 마주치고, (그 전에는 필시 그에게 버림받고도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을 그녀다) 왜 훈의 포크를 썼냐며 따지고 묻는 장면에서 일말의 희열(카타르시스)을 느낄 수 있다. 주변 모두가 ‘왜 너 같은 애가 그런 일을(불륜이든 살인이든, 영화 속의 맥락에서)’라고 말했을 때, 그 말에 홀로 상처 받지 않고 일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은, 동병상련의 마음이 주는 힘,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친밀한 유대감. 만추에서 보였던 것은 지독히 외로운 두 사람이 서로의 방식으로 (나름 그 결말을 알면서도) 치유받던 방식이다. 애나의 ‘왜 이 사람의 포크를 썼어요?’라는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세상을 향한 질타는, ‘ 왜 내 삶을 짓밟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내게 소중한 사람을 욕하나요?’라는 큰 울림이 있는, 애나처럼 소심했던 여자에게는 굉장히 큰 반발이었던 거다.


이 커다란 변화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건, 탕웨이의 꾸밈없는 모습이다. 만추의 라스트 씬은 이렇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애나에게 진하고 강렬하게 키스해 주는 훈, 그리고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 (필시 훈은 치정관계로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애나. ‘첫사랑’과 비슷한 느낌의 ‘끝사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재잘거리던 학생 시절의 나와 그녀들이 생각났다. 실제로 영화관에서 관람했던 게 영화 개봉하고 1년쯤 지나서의 가을 끝자락이었다. 아마도 200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아트 선재센터에서 나와 안국역으로 걸으며 어떤 사랑을 할까 꿈꾸던 세 사람은, 세월이 흘러 모두 유부녀가 되어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그 타이틀이 싫다고 박차고 나와 다시 '나'라는 싱글 인간으로 사는 건 나뿐이다. 때로는 환하게 빛을 밝힌 나의 자의식이 싫을 뿐이지만, 한 편으로는 진짜 나 다움을 찾아가는 늦은 행보가, 평생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진정 나 다운 것이 가장 아름답고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걸 몰랐던 나는, 애나처럼 계기가 없을 뿐이었던 걸. 나의 만추는 지금이라는 걸.


최근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집단 상담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이 내게 해 준 칭찬과 인사는 이것이었다. '아일린은 잘 익은 홍시 같아요. 뭐든 무르익어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지만, 조금이라도 터지면 무너질 것처럼 여려요'. 시간의 바람과 풍파를 지나 지금에 이르게 된 건 참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아무리 강한 듯이 폭풍 속에 맞서고 있어도, 나의 진짜 모습이 간간히 나온다는 걸. 그 이야기를 진작 들어주고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많이 지난했던 지난 나날들을 기쁜 마음으로 뒤돌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사랑이 아픔이 되었어도, 그 뒤에 남은 건 진짜 나를 찾아가려는 행보와 성숙함일 테니.


‘만추’는, 그저 기억 속에 자리한, 누구에게나 있을, (첫사랑이 끝사랑이어도 좋겠지만) 첫사랑의 아픈 조각을 형상화한 작품이고, 내가 탕웨이라는 배우를 사랑하게 된 영화이며, 일상에 찌들어 쓸쓸한 저녁에 회상해 보면서 알 수 없는 웃음 짓게 해 주는 그런 영화다. 인생에 단 맛만 있으면, 어떻게 이런 감정이 소중한 것을 알까. 조금은 더 어른이 되어 보자 한다. 그리고 나는, 감정을 간직하고 느끼는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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