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일기장을 정리하다가 2년 전에 연애할 때 썼던 글이 보였다.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네가 내 인생에 들어오는 경쾌한 그 소리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그 안도감, 반가움, 충만함.
내게 오는 그 길이 꽃길이길, 내가 너에게 가는 길이 찬란히 빛나길.'
유난히 몸이 힘들고, 자기 관리 못해서 무너진 지난주의 일들을 겨우 겨우 마무리하고, 드디어 맞이한 조용한 토요일 오후. 빨래와 청소, 요리를 마치고 2013년도에 만들어진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서 혼자 만든 점심을 먹었다. 자취는 그렇다. 하루 종일 아무랑도 이야기하지 않을라 치면 혼자 넷플릭스만 보면서 침잠할 수 있다. 사진으로 찍어보면 나름 맛있어 보이는 돈가스를 만들었는데 먹는 중 마는 둥 하면서 영화에 빠져 들었다.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게는 돈가스가 엄마 아버지가 맞벌이하실 때 혼자 사다가 먹던 그런 음식이기도 하며, 일본 유학할 때 자주 돈키호테 서 팔던 불도그 소스 벗 삼아 만들어 먹던 소소한 가정식이다. 반대로 말하면 외로울 때 나를 채워주는 그런 음식이랄까. 두드리고 밑간하고 전분 묻혀서 계란물에 다시 빵가루로 가는 과정이 다채로워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튀겨질 때 공중에 도는 그 고소한 냄새가 좋다. 따뜻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세상에 내가 알지 못하는 행복이 아직은 존재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소망과, 열망과, 동경과, 두려움. 시간 여행이 가능한 주인공 남자 '팀'은 참 다정하고 따뜻하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 그런 집에서 자라났다. 바다에서 수제비를 뜨고, 새해를 맞는 파티를 함께 하고, 금요일마다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가족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나름 돌이켜 보면 내게도 엄마 아버지와의 행복한 추억이 있기는 하다. 아직 어릴 때 엄마 아버지가 핫케이크를 구워주시며 찍었던 사진. 집 신발장 위에 고이 장식되어 있던 그 사진이 내 뇌리에 참 크고 찬란하게 박혀있다. 지금도 가끔 아이처럼 핫케이크를 탐하기는 한다. 팀에게는 그와 비슷하게 순수하고 착한 여동생 킷캣이 있다. 팀과 킷캣이 다른 건, 단 하나. 팀은 언제고 원하는 인생의 한 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전적인' 능력을 타고났다. 이제 막 스물한 살이 된 그에게 아버지는 가족의 비밀을 공유하며 이 능력을 유용하고 조심스럽게 쓰기를 당부한다.
이십 대는 누구에게나 좌충우돌의 시기일 것이다. 일찍 철이 들어도, 아직 애여도, 이십 대가 되면 자신의 신념이나 꿈에 따라, 혹은 주변 환경에 따라 좋든 싫든 많은 걸 경험하게 된다. 연애도 그중 하나일 텐데, 뒤돌아 보면 이때 얼마나 건강한 연애와 이별을 했냐에 따라 사랑에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 대의 팀은 집으로 놀러 온 사촌의 친구 샬럿(무려 마고 로비!)에 첫사랑을 느끼지만, 번번이 그녀에게 고백하는 건 실패한다. 순간들을 되돌려 잘해 보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그녀가 떠난 뒤 런던으로 취직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팀은 운명처럼 매리(레이철 맥아담스! 너무 예쁘다)를 만난다. 사랑은 쟁취라며 그녀의 남자 친구가 되기 위해 그는 많은 경우 자신의 능력을 남용했다. 영화가 정말 흥미로워지는 시점은 이야기가 잔잔히 흘러가는 순간에서부터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나름 하루하루를 즐겁고 충만하게 보내는 법을 터득한 팀은 과거를 되돌려 현재를 바꾸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인생이 충만해졌기에. 아버지의 죽음도, 그 후의 삶도, 팀은 물 흐르듯 매리와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간다. 킷캣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도, 매일이 좋을 수는 없어도 견디는 법과 즐기는 법을 배우며, 함께 살아나간다. 순리대로 사는 인생은, 혼자 사는 삶은 아닌 것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 잠시 혼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살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까?
나름 나도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돌보고, 힘들면 쉴 줄 알고, 가끔 사람들과 웃으면서 즐길 줄 안다. 아직은 술을 좀 많이 하긴 하지만, 새해의 목표는 좀 더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새로 산 조깅화에 발을 구겨 넣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하고 걷기에 나섰다. 석양은 아직 한참 남은 '무엇이 써질지 모르는' 내 인생을 아름답게 비추는 듯이, 무턱대고 예쁘기만 했다. 계속 마음이 예쁜 나로 남고 싶지만, 아이처럼 사람이 좋고 싫다는 너무나 명확한 그런 태도는 버리고, 너른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it's about time'
한 번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으면 하는 인생의 정주행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