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 Theatre Tribute to Edith Piaf(2021)
죽을 때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 앞에 스친다는 아주 닳고 닳은 표현이 있다. 영화로 치면 클리셰 (cliche) 혹은, 인류 보편적인, 누구나 살면서 겪는, 것들을 표현한 클래식이라고 해 두자. 이번 주의 회사 생활은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다. 오늘의 감정과 며칠 전의 (SNS에 올렸던 표현처럼) 감정들은, 지나간 내 삶을 자동으로 복기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서, 몇 글자 남겨보려고 했지만, 벅찼다는 (overwhelmed) 표현이 제일 맞을 것 같다. 아주 많은 나날들을 좌절과 분노로, 악바리처럼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결과에 보상을 받은 것도 같은데, 잃고 얻은 것에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에, 공허하기조차 하더라.
마침맞게, 회사에서 선물을 하나 주었다. 회사가 스폰서한 공연 티켓이었다. 에디트 피아프 (1915~1963)는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가수이며, 2007년도 마리옹 코티아르가 에디트로 분한 영화 라비앙 로즈로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 원제는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 La Mome Piaf (작은 종달새) 정도였는데, 라비앙 로즈 (La vie en rose)라는 단어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이런 제목으로 개봉했던 듯하다. 장밋빛 인생이라고 직역하기에는, 좀 문맥적 차이가 있다고 하던데, 각설하고.. 오늘 공연을 보면서 그때 이 영화를 같이 봤던, 참 순수했던 나의 친구가 생각났다. 때 묻지 않은 그러나 냉철한 이성을 가졌던, 그녀가 가끔 보고 싶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까. 한 사람이 그의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좌절을 하고 성공을 맛볼까. 그 안에 녹아 있는 모든 울분과 환희는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들은 내게 사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아직 많이 어렸을 때 엄마는 대학교에 다녔다. 엄마의 전공은 불어불문학이었고, 책을 읽을 수 있을 때 책장에 꽂힌 로망 롤랑의 책이나, 프랑스 시나, 내가 관심 많았던 프랑스혁명에 관한 책이나, 등등이 보였다. (바로 이전 포스트 참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엄마가 집에 있을 때 라디오로 틀었던 샹송 테이프의 노래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아버지보다 면허를 빨리 따서, 차를 몰고 다닐 때, 나를 학교에 내려 줄 때, 주로 샹송을 듣고 계셨다. Padam Padam이나 사랑의 찬가, 고엽 등등. 에디트 피아프의 곡들이 많았고 그렇지 않은 가수의 노래들도 있었는데 몇몇은 (sans toi mamie랑 Tombre la neige) 가사를 모르고 지금도 따라 부를 수 있으니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달까. 이런 내가 외국에 나와 프랑스인 보스를 보시는 회사에 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나. 인생은 돌고 돌아 참 신기하다. 그 어린 시절의 내가 아직 기억 속에 덩그러니, 있다.
공연은 사실 기대 이상이었다. 호스트인 베테랑 엔터테이너 배우의 이력을 검색해 보니 French institute에서 공부했던 적이 있고, 프랑스 문화청으로부터 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문화 훈장)과 기사 작위를 수여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의 공연은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며 고엽을 부르고,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적절히 스토리 텔링 하는 모습을 보며, (히트곡들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프로듀서와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느꼈다. 한 사람이 한 가지의 외국어를 더 할 수 있는 건, 그 나라 문화의 정수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자 최고의 가치를 익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언어에는 문화, 역사, 철학 등 아주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기에. 언어를 이해하면 그 나라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도 아주 편리해진다. 어릴 때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쭉 보고 자란 내 마음은 외로웠을지언정, 언어와 책에 대한 내 욕심은 정녕 끝이 없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불어도 배웠었다. 어떤 언어들이던 문장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되면 계속 뭔가를 써 내려가곤 했었는데, 지금도 많이 더 쓰고 싶은데, 게을러져서 감정이 동할 때만 기록을 남기는 내가 별로이기도 하다.
에디트 피아프의 곡들 중 제일 좋아하는 곡은 어린 소녀가 속삭이듯 또 신나서 노래하듯 말하는 밀로드 (Milord)라는 곡이다. 가난한 집에서 가수를 꿈꿨지만 창녀로 살았던 엄마와, 서커스단을 따라다니던 아빠 사이에 태어나, 그나마 그들이 이혼하자 여기저기 따라다니며 방치당하기 일쑤였던 어린 에디트. 할머니는 그녀에게 잠을 재우기 위해 와인을 먹였고 씻기지도 먹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서커스단을 쫓아다니며 자신에게 노래의 재능이 있음을 알았고, 아버지의 어머니를 따라 간 창녀촌에서 음악과 화장을 배운 게 아이러니였다. 목사가 그녀를 데리고 나오고, 카바레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에디트는 찬사를 받는다. 그 후 유명한 프로듀서에게 발탁되어 노래를 시작했다고.. 하지만 데뷔 전 열일곱 살의 어린 에디트는 사랑을 했고 마르셀이라는 아이를 출산했었지만, 병으로 사망하였다고 하고, 너무 가난한 나머지 아이를 묻을 돈 조차 없어 매춘을 했어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녀의 취미는 뜨개질이었는데, 사랑하는 대상이 매번 바뀔 때마다 그들에게 스웨터를 떠 주는 게 강박증에 가까웠지만 그 스웨터를 완성하기 전에 헤어졌다고 했다. 오늘 공연의 스토리 텔러는 그녀의 대상들을 프로테제 (protege)라고 표현했는데,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삶의 방향성에 대해 영향을 받는 이들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녀가 원했던 사랑의 모습은 nurture (양육과 보살핌)이었을지도 모른다. 방황하고 상처 받기 전에 올바른 인생길로 안내해 줄 영향력 있는 가디언 (guardian)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결핍된 것들을 오랫동안 찾아 헤매며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아니, 내가 그러했기에.
위 공연을 보던 날 광화문에서는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연설과 거리 행진을 보고자 하는 인파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내게 더 의미 있었던 건 회사 앞 세종 문화회관에서 하는 이 공연에 가는 일이었다. 내 인생은 그때 흔들렸었다. 흔들리고 흔들려서 나란 촛불이 꺼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 내게 사랑은 인생의 동반자를 찾는 것 이상의, 무한대의 이해와 인정을 갈구하는 의미가 있었다. 아가페적인 사랑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 평등한 연인 관계이기에, 생각과 마음이 많은 나는 늘 사랑에 실패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란 존재가 미약했기에, 내가 하고자 하는 꿈이, 가고자 하는 길이 가까운 타인을 설득하기에 미미하고 유약하기 그지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포기의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은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게 두려웠다.
파니 핑크라는 1994년 독일 영화가 있다. 아주 슬프지만 원제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Nobody loves me)'고, 이 노래의 주제곡은 에디트 피아프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사랑을 떠나보내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마지막 재기를 말하듯 불꽃처럼 부른, '나는 후회하지 않아 (Non, je ne regrette rien)'란 곡이다. 자신의 회환과, 아픔과, 사랑과, 불꽃같던 노래와, 인생을 돌아보며 부르는 그 곡의 가사는, 내 인생의 지난 부분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으며, 내 인생의 행복은 오늘부터 당신과 함께 시작된다는, 아름다운 노래다. 유부남 마르셀을 사랑한 건 잘못됐지만, 그녀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마음의 평화를 찾았을 그녀의 몇 년이 아름답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공연을 보는 내내 나는 지난 내 인생 어딘가의 부서진 계단참, 골목의 안 쪽, 차가운 방 안, 텅 빈 연구실, 겨울날의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 울고 웃고 분노하고 자포자기 한 나도 있었고,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향해 열정을 불사르던 내 모습도 보였다. 옆 자리의 친구가 '그렇게 감동받았냐'라고 물어볼 만큼 마지막 노래 '후회하지 않아'에서 눈물이 났다. 그게 요즘 내 마음의 다짐이었기에. 나는 어느새 스토리 텔러와 함께 무대 위에 서서 독백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내 가슴속 이야기들에 대해. 나의 기억들에 대해. 나를 힘들게 했던 트라우마와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는 과정에 대해. 자리에 앉아 노래를 듣고 있는 나는 내 친구들과 함께이지만, 무대 위에서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는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왜 공연 커튼은 빨간 비로드일까? 하고 친구가 물었다. 글쎄, 제일 강렬해서?
그래도 나는, 이런 내가 무섭거나 두렵지 않다. 그저 많은 글을 쓰고 싶어 졌을 뿐, 시공간이 허락한다면 자리에 주저 않아 울고 싶어 졌을 뿐. 사랑하고 사랑했던 나의 프로테제들에게 , 나의 젊음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을 뿐. 아주 오래전에, 대학로에서 강신일 배우의 '진술'이라는 1인극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랑하던 아내가 죽은 줄 모르고 그녀에 대한 사랑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는 그의 광기에, 왜인지는 모르지만 (민폐는 아니었기를)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주아주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다. 내 친구 손을 잡고서 무대 뒤 분장실에 굳이 굳이 찾아가 그분에게 포스터에 사인을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강신일 배우는 내게 '행복한 사랑을 하세요'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이유는 이십 년이 지난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도 나는 깨달음을 찾아가는 내가 좋다. 문화와 어떤 형태의 예술에 대해 음미하고 토론하고 생각하며 글로 내 감정을 표현해 나가는 내가 좋다. 내게 제2의 삶이 있다면, 그리고 아직 젊다면, 나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