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이맘때 대학교에서 듣던 교양 수업 중에, '소설 창작의 이해'라는 것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적잖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던 지라, 교양 수업은 마음 가는 대로 마구 신청해 저장하고 했던 새 학기의 나. 그 수업의 과제가 뭔지, 어떤 커리큘럼인지, 학점이 잘 나오는지, 출석은 반드시 채워야 하는지, 이전 강의실과는 먼 곳인지 가까운 곳인지, 역시 하나 꽂히면 전진하는 나 답게 망설임이 없었던 클릭질. 물론, 같이 듣는 동기가 전혀 없어도 무방했다. 동기들은 전공 수업에서 또 과방에서, 하교 후의 술자리에서 지겹도록 봤으되 그 안에 내 마음을 진짜 트고 나눴던 이들은 한 둘에 불과했으니까.
첫 수업 시간에 한 학기의 단 하나뿐인 과제가 발표되었다. 학점도 거의 이 과제로 결정된다 하셨다. 짐작하시듯, '중편 소설 제출' 이 그 과제였다. 낭패였다. 시는 써 본 적이 있고, 영문으로 에세이도 많이 썼고, '응답하라 1997'에 나오는 시원이처럼 팬픽도 많이 써 보았지만, 과제로 내는 중편 소설은, 분량도 훨씬 많았고 유기적이고 독창적인 이야기여야만 했다. 머릿속으로 많은 것들을 그려봤지만, 역시 나는 내 안에 '소화되지 않은 밥알들'처럼 걸려있던 나의 이야기 외에는 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었던 아이'의 외침이었다. 소설의 제목은 '내 인생의 자유' 였으며, 그때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서의 나를 받아들이고 바라보지 못하고, 도피하기에 급급했기에, 소설에서 그려진 여주인공의 여정이 곧 내 마음 둘 곳이었다. 거의 모든 소설가들이 그러할까. 나의 공식적인 '처녀작'은 절반은 나의 경험에서, 그리고 절반은 나의 상상력으로 채워졌다. 지금보다 본체가 훨씬 두터운 컴퓨터로 하루 종일 앉아서 타자를 치던 내가 보인다. 밥을 먹는 것도 하는 둥 마는 둥 조금은 더웠던 5월의 어느 주말 나는 10시간 정도를 내내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의 분신 같은 여자아이의 이야기들, 울분이, 상처가, 바람이, 희망이 하얀 페이지를 가득 채워 나갈 때의 그 충만함을 잊지 못해서 지금도 자판으로 뭔가를 두드려 기록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단숨에 쓰인 나의 단말마들은 그렇게 완성되었고, 무사히 제출되었고, 학점도 잘 나왔고, 교수님 입에서 제법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 중 하나였던 것으로 언급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이야기가 '상상력보다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랍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뭐든 정공법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점점 가슴에 쌓여가고, 그 이야기들은 내가 사랑하거나 애정 하는 대상에게 풀어내 놓고 싶은 이야기들로 쌓여갔다. 그 소설은 당시 청소년 대상 잡지에 10만 원에 판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출판물을 보지는 못했다. 급급하게 나의 이야기를 팔아 번 돈으로 나는 여행을 떠났었다. 한 순간도 집에 있는 것이 싫었던 나의 대학 생활 내내, 여행을 갈 것이 아니라 내 방을 구하는 데 돈을 썼었더라면. 공강을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의 시간들은 좀 더 값졌을까. 지나고 나니 드는 생각이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 이상 열심히 살지는 못할 것 같다. 나란 존재의 틀에 갇힌 채 몸무림 치며 나의 최대치를 살려고 했던 나를 추모하고 추억해 본다.
그 후 20년 동안, 살점이 찢겨나가는 것처럼 마음 아픈 사랑도 해 보고, 믿을 수 없이 빛나는 웃음으로 점철된 아름다운 나날들도 있었건만, 이제와 드는 사랑에 대한 반추는 '왜?'라는 물음이다. 왜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 자연스러운 행위에 대하여 늘, 의미를 부여해야 했을까. 누군가가 내 마음을 받아주는 것에, 인정해 주는 것에, 목숨처럼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야 했을까. 빗 자락에 스며들듯 자연스러운 사랑을 했었더라면 좋았을 걸. 소곤대는 바람처럼 정중한 사랑을 했더라면 좋았을 걸. 커다랗고 성난 파도가 여러 번 휘몰아치는 사랑만이 거룩하고 아름다웠던 건, 내 마음이 감정을 느끼지 못할 만큼, 넝마가 되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픈 건 숨기고 괜찮은 척만 하려고 했으니까, 남들은 일주일이면 될 이별의 상처가, 나는 일 년을 갈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면 나는 내가 꼭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오래오래 머무르며 추억하고 아파한 몇 차례의 이별들은 내 마음에 조그만 무덤들을 만들었다. 힘들 때마다 돌아보며 애도하던 그 속에서 나는 일부러 나오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부정은 사랑에 대한 이상과의 괴리를 더 크게 만들 뿐이었다. 괜찮은 척하며 버텨온 나는 최근에서야 비로소, 이별하고 힘들었던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힘들었다, 잘 버텼다'라고 말해주고 나니 거짓말처럼 마음을 짓누르던 돌 하나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아무도 내 마음이 힘든지 아닌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센 척할 필요 없었는데, 나를 지키는 방법은 잘못되었었다. 그저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한 사람의 여자일 뿐이었다. 그냥 그런 나를 오롯이 바라보자니, 지금까지의 일들이 물거품처럼 가벼워진다. 삶은 참 신기하다. 인생은 이렇게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다. 열정으로 타고 남은 재들이 덩그러니 놓인 내 마음의 방에는 5월의 햇살이 조금씩 들고 있다. 현명함에는 시간도 시련도 필요하다더니, 행복이라는 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사는 거 그거 하나였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표지 와인 : Evans & Tate, The Go-Between Shiraz, 2017. 쉬라 특유의 바디감과 영롱함, 마음에 드는 라벨, 서호주 와인. 브리치즈, 스피니치 샐러드, 미트볼과 어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