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낙도의 삶을 꿈꾸며

고요 속의 외침

by 장서율


아주 오래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R.ef 가 한창 인기를 구가할 무렵 나는 해외에서 중등 과정 수학 중이었는데, 그때도 이 노래를 카피해서 카세트테이프로 듣곤 했었다. 이 노래를 부르던 가수들이 얼마나 에너지 넘치는 춤을 추었든 (실제로 아주 최근에 이들의 퍼포먼스를 유튜브로 보았다는... 그 시절에 유튜브는 왜 없었을까) 잘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친구들과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름 '한국에서의 최신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중요했을 뿐이다. 그렇게 또래들과 적당히 즐겁게 어울리는 게 좋았던 나이. 언제쯤이었을까. 거기서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내려 왔을까. 자기 힘으로 걸어온 걸까, 세월에 휩쓸려 온 걸까. 노래 가사는 이렇다.


고요 속의 외침 by R.ef

내 맘 속에 고요함을 깨뜨리고 널 두고 난 떠나네

운명처럼 받아들일 헤어짐이 눈물로

.. 더 이상 나에게 너만을 강요하지는 말아줘

서둘러가야 할 이별에 눈물은 장애가 될 뿐야

때로는 적당히 자신을 속이며 만나왔지만

솔직히 이제는 너를 떠나겠어(떠나겠어)


신나는 리듬에 가사는 슬프다. 요즈음은 모 예능프로에서 유행한 게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고요 속의 외침' -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사람도 이런 노래는 잘 모른다. 그러면 다시금 내 나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친구와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웃이 개를 키우든, 고양이를 키우든, 아이들을 키우든, 나는 사실 별로 상관이 없다. 애완동물이든 아이든 내 눈앞에서 학대하지 않으면 나는 만고 땡이다. 부모에게 싸늘한 눈빛을 받거나, 소외당하는 아이들을 보는 게 제일 힘들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이제 알고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다. 세상에는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 없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익숙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난 더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으른 나를, 안온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갈 내가 될까 봐서. '안빈낙도'의 삶을 꿈꾸다가도 지금 내 통장에 얼마가 있지? 아직 얼마나, 몇 년이나 더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아직은 은퇴해서 살 날이 멀고 또 멀다. 내가 자라 온 환경 속에서 '돈'은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돈 때문에 싸우고 또 멀어지고, 돈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버리고 살아가는 걸 마음 아파하면서 보고 자라 서였을까. 지금 나는 돈 버는 데 제일 빠삭해야 하는 영업직군에 속해 살고 있는데, 단순히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1) 사람을 만나는 데 거리낌이 없고 2) 돈을 좋아해서, 돈 계산을 잘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 틈'에 더 관심이 많다. 어떻게 하면 그 협곡같이 깊은 커뮤니케이션 갭을 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만의 언어가 아니라 공용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서비스 영업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길을 가다 보면 내가 궁극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사람에 관한 공부를 하는 길로 가게 되길 바란다. 그 길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향후 5년, 10년, 15년의 계획도 마음속으로 세워보고는 있다.


'내 맘 속에 고요함을 깨트리며 나는 너를 떠나네'


내가 떠나야만 하는 그 대상이 꼭 사랑했던 '너'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떠나야만 했던 건 나를 옥죄고 있던 틀, 벗어나기 어려웠던 유리천장, 고정관념, 그런 것들이었어. 나는 사랑이라는 추상 명사 속에서 구원 혹은 변명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랑해서, 널 떠난다. 사랑해서, 널 만난다. 사랑해서, 널 쫓는다. 이런 이유들은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돈' 이어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 무엇일까. 길가에 서있는 고목들 가운데서 큰 나무 하나를 보았다. 나무 중간에 잘려나간 가지들이 있던 자리에서 새롭게 새 순이 자라는 걸 보고 그 나무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한 자리에서 정착하는 큰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휩쓸리지 않고 자기중심 가지고 사는 내가 되고 싶다. 이제는 나 자신만 보고 그렇게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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