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애정결핍이라는 단어를 듣는 동시에, 그 사람에게 다시 내 온 마음을 쏟아 따뜻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오롯이 희생일 수 없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 사람 자체로 좋은 건 내가 나이 들어버려서 마음이 편한 상대를 찾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 녀석이 좋다. 예민하고 정갈한 것도 마음에 든다. 같이 살아도 나쁘지 않을 상대다. 혼자 여러 해 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윤기 나게 잘 닦인 바닥에 앉아서 한편에 휴지나 부직포를 접어 두고 방을 닦으며 차 한 잔 마시는 걸 좋아하는 걸. 마음이 산란할 때는 화학약품 도포한 화장실 타일 구석구석 칫솔로 박박 닦아내는 걸 좋아하는 걸. 물건이 제자리에 없는 걸 싫어하고, 잃어버리는 것도 엄청 싫어한다는 걸. 식사를 할 때는 천천히 밥을 차리고, 유튜브에서 본 레시피를 바로바로 활용하는 걸 좋아하며, 밥 먹으면서 편안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게 최고로 행복하다는 걸. 거기에 술도 한 잔 반주로 할 수 있는 상대면 좋다. 청소와 요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게 둘을 싫어하거나 잘 못하는 사람과 사는 일은 힘들다. 입맛이 비슷하지 않은 사람과 사는 것도 힘이 든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앞에 앉아서 밥을 먹는 저 녀석은 꽤 괜찮은 식구가 될 수 있겠다 싶다.
사실 그 기저에는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를 향한 내 감정을 재작년 중반부터 계속해서 곱씹어 보고 있었다. 다시는 사랑에 있어 실패하고 싶지 않았기에, 내가 의외로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어서, 이 사람이 좋은 게 맞는지, 같이 살게 되면 잘 맞을 사람인지, 교육 수준은 비슷한 지, 가정환경은 괜찮았는지. 좋아하고 못 참아하는 건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요즈음 들어 이 녀석이 나에게 여성스럽다, 환해 보인다, 예쁘다는 말을 한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자주 이루어지고 하루를 보내면서 서로 시간이 짧다는 걸 느낀다. 서로 먹을 걸 챙겨주고 성시경의 ‘두 사람’이 나오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설레어한다. 서로가 연인을 찾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두근거리며 설레기도 한다. 오늘은 김밥을 만들었고 그는 내 앞에서 내가 먹여주는 김밥을 기꺼이 먹어주었다. 우리는 그냥 편한 선후배 사이일까? 아님 식구일까.
나는 사랑을 시작하면 끝이 보여서 늘 두려웠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사람과 살았는데 너무 쉽게 끝이 났다. 이 사람은 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했다. 성향 테스트를 하면서 그가 내게 장난처럼 던지던 말, ‘제 성향은 ETSJ입니다. 저랑 잘 맞으시면 연애할까요?’ 순간 나는 심쿵했다. 멈칫했다. 앞뒤 없이 ‘응!’이라고 대답할 뻔했다. 한 박자 쉬고 대답했다. ‘저랑 잘 맞으시면 연애합시다’라고. 이건 썸일까? 나는 오후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나이 마흔 다 되어 감정을 느끼는 둘이서 오손도손 하우스 메이트로 살아가는 모습을.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불확실했던, 어려 보이기만 해서 싫었던 녀석이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확고하게 터를 잡는다. 나도 그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공기처럼 물처럼 스며서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했기에 칭찬과 사랑이 고팠던 사람을 보는 건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다시 ‘같이 살고 싶은 남자’가 아닌 ‘같이 자고 싶은 남자’를 선택할 까 봐 두려웠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히려 또다시 마음이 허한 사람에게 사랑을 퍼부어 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나 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런 빛깔의 사랑밖에 못 하는 걸까 이제. 주는 것에 익숙해서 받는 것은 바라지 않는 걸까. 한 번은 아이처럼, 공주처럼 사랑받고 싶었는데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 녀석뿐일까.
그럼에도 그와 다시 만날 주말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그를 위해 더 예쁜 내가 되고 싶고, 더 날씬한 내가 되고 싶고, 더 마음이 차분하고 줄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내가 되고 싶다. 사람 마음 한 길 알 길 없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