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던 오늘, 1년 동안 미뤘던 치과 예약을 하고 스케일링을 마치고 나오는 길. 원래는 요가를 갈 계획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지친다. 퍼석해진 머리카락 끝이 목덜미를 찌른다는 생각이 들어 미용실로 향했다. 한 번 정도의 영양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거라던 미용실 선생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오랜만에 느끼는 호사에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다. 한국어로 된 잡지가 반가워서 올해 1월 것을 열심히 읽었는데, 뜬금없이 마지막 부분에 2021년도 토정비결이 나와서 살짝 보았다. 한 해가 중반을 넘기니, 돌아볼 것도 대강은 생기지 않았나 싶었는데, 7-8월 사이의 언급에서 눈이 멈춘다. 지금은 잠시, 쉬어가란다. 마음 비우고.
머리를 부드럽게 빗질해서 말리고 거기서 좋은 냄새가 날 때만큼 기분 좋은 것도 없다. 누군가 내 머리를 매만져 줄 때, 나른한 졸음을 느끼며 어릴 적 대청마루 같은 데서 내 머리를 말려주던 엄마의 손길을 추억해 본다. 머리가 젖은 여자 아이들을 보면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주고 싶은 충동을 가볍게 느낀다. 마음이 가는 이성을 보면 그 머리카락 사이로 내 손을 집어넣고 싶은 페티시적 욕구도 간혹, 느낀다. 내 마음은, 자꾸 어디로 두둥실, 이렇게 흐르고 있나. 매일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아주 잠깐 호사를 누린 것인데, 꽤 오랜동안 허락되지 않은 일상 다운 일상이 그리웠다.
나태주 시인의 인터뷰와 '행복'이라는 시를 발견했다. 간략하면서도 강렬한 울림. 역시 시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뼈저린 통찰이 수반되어야, 마음을 울리는 시를 쓸 수 있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마침 톡이 울린다.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에게서 온 안부였다. 나도 모르게 이 시구절을 나누었다. 그냥, 팍팍한 인생, 좋은 거 보고 살자며 한 마디 했다. 인생 별거 없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일상이 멈춘 요즘, 사람이 답이다'. 점점 오래 지속되는 더위와, 코로나와, 경제적인 위기와, 업무적인 지침과, 사랑이란 것의 감정 소모. 더 이상은 젊어지지 않을 내 육체와 그와 반대로 속절없이 순수하기만 한 내 마음 사이의 괴리. 잊힌 반짝 거림과 마음의 버석거림. 이것을 메워줄 윤활유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답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따스하게.
오랫동안 꿈에 나왔던 나쁜 기억을 남기고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8월부터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뒤돌아 볼 것들을 남겼지만, 이제는 상처의 흔적조차 남지 않아야 할 사람과, 새로운 마음으로 채워야 할 나날들이 눈앞에 있다.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건 지나간 모래성 위에 쌓은 대책 없이 아름다운 꿈들이었다. 더운 날씨를 이겨낼 만큼 시원한 물로 깨끗하게 비워내리라. 더 이상 엉기지 않는 머리칼처럼 곱게 빗어내리리라. 이 내 마음 한 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