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힘이 드는 저녁
짧은 연휴가 끝나 일을 해야 하는 아침이 밝았다. 닷새 정도의 연휴 동안 적어도 5병이 넘는 와인을 마셨던 것 같다.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충만한 나날들이 지나고 나니, 마구 몰려드는 일에도 나름 내내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저녁나절이 되고 바쁜 하루가 끝나니 또 잠시 공허감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몇 자 적어보려고 컴퓨터를 켰다.
어젯밤에 영화를 한 편 봤다. Silverlining playbook (2012) 자그마치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에 로버트 드니로까지 등장해 주시는 영화. 강박장애와 트라우마로 점철된 사람들이 투닥거리고 서로 길들여지면서 종내에는 사랑에 빠지는 커플이 탄생하는 그런 흐뭇한 영화였다. 굳이 영화 리뷰로 쓰지 않는 이유는 영화보다도 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이전의 내 모습이 더 이상 잘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 와서, 당황하기도 했고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했다. 내가 아프던 순간이, 인생이 정말 괴롭던 순간이, 그렇게 익숙하게 내 주변에 있던 불행 - 나를 감싸고 있던 그 단단한 껍데기가 언제 사라졌는지 알지도 못하게, 사라져 버렸다. 내 마음을 얼마나 많이 차지하고 있었던 무게인지, 그것들이 빠져나간 자리가 공허하기 짝이 없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멍하게 있는 요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한 가지뿐이다.
나를 위한 걸 하자. 더 늦기 전에 나를 위해서 살자.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서 결정하는 일은 익숙하지가 않다. 이렇게 나이를 먹었어도 물가에 처음 나온 애 마냥 쉽지가 않다. 꽤 오래 직장을 다녔는데, 나 자신보다도 일이 우선이었기에 여기까지 온 건 아닌가 싶다. 내 태도가 변하면 사람들이 떠나지는 않을까, 그런 고민도 했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그런 집착 아닌 집착도 내려놓고는 있다. 진작 이렇게 살 걸 그랬어 하기에는 아직 적응 단계인 요즈음. 사람에 기대고 사람 때문에 아파했던 나에게서 벗어나고자 차라리 스스로 외로워지려고 하는 요즈음. 이런 마음이 서서히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서 햇볕 가득한 선착장에 도착해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짧은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