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처하는 나의

방어태세는 글 쓰기

by 장서율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다. 수많은 점조직인 우리는 비교적 같은 구멍에 소통창구가 나 있는 먼지 덩이 같은 서로의 인격과 만나 대화하고 친해지려고 애쓴다. 그 먼지 덩이 안에는 수많은 편견, 아집, 측은지심, 연민, 자가당착, 허세, 등등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포장은 그럴싸하다. 한 사람의 인간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어 자기 몫을 하면서 사는 일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해본다. 하지만 나의 답은 이미 나와있다. 지금 즐기는 것을 즐길 수 있되, 진짜 나 자신이 되어 보는 일. 타인들과는 조금 다른 인생의 목표와 기준점을 가지는 일. 평범하게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기 가정을 가지고 꾸리는 일 또한, 몇십 년은 자아를 죽이고 엄청난 희생을 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있는 내가, 외로움 같은 것에 나의 자유를 포기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만이 거주했던 창도 공기도 바람도 없는 진공 상태의 세계가 있었다. 밖에서는 기능하고 남들과 비슷한 포장을 한 먼지 덩이 인 내가, 무중력 상태로 돌아와 둥둥 떠나니던 암흑의 세계 속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말도 없었다. 따라서 외롭다는 감정 또한 없었다. 소통을 시작하면서, 또 다른 나와 비슷해 보이는 개체에게 모호한 기대감을 품게 되면서부터, 그렇게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괴로움은 그 타인이라는 개체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바라봐 주지 않을 때 생겨났다. 자의식은 개체들이 내게 말을 걸 때마다, 내가 아는 나 자신과는 너무 다르게 나를 봐줄 때마다 비로소 생겨났다. 원죄의식처럼 외로웠던 나는 무엇이 가장 행복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내 세계 속에 안겨 있을 때 가장 편안하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눈물이 말라버렸다.


내 몸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서 더 많은 개체와 소통을 하는 것이 과연 내게 바람직한 일일까? 그것을 선택한 건 내가 아니다.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면서 조금씩 나의 진공 포장지에 틈이 생겨버렸다. 빛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내 살갗을 간질인다. 이런 세상도 있어, 조금 더 너를 감싼 틀을 뜯어내 봐 봐. 결국 우리도 다 다르지 않은 ('욕망의') 덩어리들이야. 마치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요즈음 아주 조금씩 나의 기대와 욕망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 본다. 그 귀결점에 있는 건 '더 이상 외롭고 싶지 않아요'라는 바람인 듯싶다. 한낱 먼지 덩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또 다른 개체를 사랑하고자 하는 나는 정말,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감정을 품는 것일까?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두렵다. 속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개체의 포장지 너머로 뚫고 들어가, 그의 마음을 단단히 움켜쥐고 바라보고 싶다. 나 자신은 고스란히 지켜지길 바라면서 또 다른 개체의 마음을 헤집고 다니고 싶은 건 나의 욕망에 지나지 않아. 다시금 세찬 비가 내리고 밤이 잦아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틈이 생긴 포장지를 기워 내는 일인지, 아니면 다 뜯어버릴 생각을 하는 건지, 모호하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다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외롭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지키면 나중에 좀 덜 힘들 것 같은 마음. 나는 점점 더 똘똘 뭉친 먼지 덩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다.


'너를 너무 사랑해. 너를 너무 좋아해. 너랑 함께 있고 싶어.'


이런 말들을 하면, 덩어리인 내가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될 까 봐, 그렇게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운 걸까.

자의식과 아집과 허영과 자가당착은 내 이름을 대신하는 것들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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