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무직입니다만 끝]
서른 무직입니다만
서른 살 백수. 시험용 글쓰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쓰고 싶어서 시작한 에세이.
나는 내 얘기하는 걸 싫어해,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대학교 졸업 이후 내 삶은 내내 취업준비기간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회사를 다닌 것도 아니어서 무언가를 계속하고는 있었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기간. 공중에 붕 떠버린 것 같은 이 공백 기간에 대한 소명을 거부하려는 소극적 저항이었다.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는 말들을 일종의 방어본능처럼 내뱉기도 했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입사자가 아닌 준비생인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아깝게,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떨어진 것이라는 걸 애써 증명하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는 이런 모든 것이 우습고 하등 쓸모가 없게 느껴졌다. “얼마나 준비하셨어요?”라는 말에는 대충 웃으며 넘겨버리고(물어보지마^^), “시험 어디 어디 보셨어요?”라는 말에는 “그냥 여기저기 봤어요”라고 무뚝뚝하게(그게 왜 궁금한데^^) 답했다. 그러고 나서는 “저는 제 얘기하는 걸 싫어해서요”라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그들을 납득시키려 했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내 경험과 생각, 즉 나라는 사람에 대해 쓴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 얘기하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 나는 누구보다 내가 겪어온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고, 나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에 대해 해명하고 싶은 사람이다. 나의 삶을 꺼내놓았을 때 누군가 비난을 하거나(서른이 되기까지 아직도 백수인 건 네가 모자란 탓이야) 섣불리 동정을 하는(아이고 불쌍해라) 등의 반응이 두려워 나를 꽁꽁 숨겨 왔지만 이제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고 나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 것이, 지난해 12월이었다.
많은 언론사 준비생이 그러하듯 나 또한 사회 문제를 논하거나, 타인의 삶을 상상 혹은 관찰한 글들을 썼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선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설득력 있고, 재밌게, 잘 읽히게, 글을 쓰는지가 관건이었다.
동북아 정세나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개혁과 같은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거대한 사회문제들을 논하느라 나의 진짜 생각들을 지워버릴 때가 많았다. 내 생각보다는 전문가들의 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주장들, 4문단의 글로 써내기에 안성맞춤인 생각들을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며 글을 썼다.
에세이는 시험용 논술·작문과는 달리 무엇을 쓸 것인가부터 정해야 했다. 나의 어떤 생각, 어떤 경험을 쓸 것인지 정하려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과 겪은 경험들에 대해 먼저 깊게 생각해야 했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이때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허공에 떠 있는 생각이 아닌 구체화된 언어로 마주함으로써 나를, 그 당시 상황을, 보다 객관화할 수 있었다. 내 속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들을, 에세이 연재 기간이 돌아올 때마다 열흘에 한 번씩(아무도 몰랐겠지만 10일에 한 번씩 쓰려고 애초에 계획했다) 거치면서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현재의 나를 바로 서게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흔히 채움의 작업이라고들 한다. 무언가를 쓰려면 그만큼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 배우고 채우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 줄의 문장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서른, 무직입니다만’을 쓰는 과정은 비워냄의 작업이었다. 내 안에서 곪아버린 감정들을 꺼내놓기도 하고 쌓여 있던 부끄러운 기억을 길어 올리기도 했다. 비워내는 과정은 일차적으로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었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을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나 혼자가 아니야 라며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은 또 다른 누군가가 내 글에 공감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일 테고.
최근 무직의 삶이 끝났다. 직장과 소속란을 채울 수 없음에서 있음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내 삶이 엄청나게 달라진 것도, 내 생각의 뿌리나 어떤 근본적 고민들이 바뀐 것도 아니지만(물론 적어도 돈 걱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앞으로 내가 쓸 글들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달라졌으면 한다.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뿐만 아니라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