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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

by 좋은루틴

파도가 일렁이면 순간 물속을 휘젓다가 다시금 잔잔한 유속을 만나면 바닥으로 가라앉는 모래알처럼..

그렇게 지내고 있다.


침전하는 순간에는 도무지 이 바다의 밑바닥이 어디인지 모를만큼 천천히.. 계속 내려앉곤 한다.

이내 바닥에 닿지 못한 채 다시금 파도를 만나 하염없이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일렁인다.


2주 정도 전부터 내 출근 가방 속에는 언제나

너의 가족관계증명서, 요양급여내역서, 사망진단서, 그리고 부검감정서가 함께 한다.


나는 보지 않고도 그것의 존재와 무게를 느끼지만 반드시 마주해야할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 한에는 부러 쳐다보지 않는다.


네가 늘 나에대해 말하던 것 처럼 나는 헛똑똑이라서

또 쓸데없는 짓을 벌이고 만 것 같아 너에게 너무나 미안한 요즘이다.


괜시리 이대로 널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경찰에 조사를 해달라 하고, 이내 막 잠이 든 너를.. 그렇지 않아도 너무나 힘들었을 너를.. 괴롭혔다.


미안해


부검을 하도록 일을 벌인 것은 잘못이었어..

너무나 미안해..


어쨌든 내가 저지른 일의 뒷수습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나는 내 가방속에 오빠 너를 가지고 다녀


장례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다시 돌아오라는 새언니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아빠가 어디에서 링거맞고 있는 거냐는 둘째조카의 울음섞인 질문.. 그렇게 어수선한 시간들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장례가 끝나면 오빠가 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아서.. 아직은 부정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나마 붙잡고 싶었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한달이 되었네

울었다 웃었다 무표정했다 슬펐다 그래


한동안 엄마를 생각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져있던 나를 돌이켜보기도 해. 나보다 실은 불행한 사람이 없을 줄 알았던 그때의 나를 한심하고 차갑게 바라보곤 해.


오빠에게 행복을 주었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불행의 이유가 된 것 같아서..

내가 가진 행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지키는게 두려워졌어.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구나

이런 걸 깨달아.


그리고 실은 오늘 아침에 문득, ‘그렇다면 사실 여태까지 수많은 불행과 불운의 순간들이 우리를 빗겨 지나갔던 걸까’ 라며 안도와 감사의 마음이 스치기도 했고, 이내 이런 마음을 느낀 것에 오빠 너에게 너무나 미안했어.


그냥 그랬다구..


거긴 어때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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