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음 주 협의이혼 확정기일에, 가정법원은 예정대로 가자."
남편이 이혼을 번복하고 다시 잘해보자고 했을 때, 조건을 걸었다.
남편이 진심으로 늦게나마 사과를 했기에, 나는 이미 새 출발에 대한 준비가 끝났고, 남편에게 남은 감정이 모두 정리되어 다시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의문이었고, 그와 다시 노력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나를 위해서라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도 안전장치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 협의이혼 확정기일에 이혼의사 확인을 받아두더라도, 3개월 동안 구청에 이혼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무효가 되잖아. 대신, 3개월 안에 언제라도 구청에 가서 신고만 하면 바로 끝이날 수도 있고. 나는 너에 대해 신뢰가 바닥났고, 네가 이렇게 진심 어리게 말한다 해도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믿을 수가 없어."
솔직하게 말했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다 못해 아예 없어졌고, 나도 나를 위한 방어막이 필요했다.
협의이혼 절차는 다음과 같은데, 크게는 세 개의 단계가 있다.
1) 관할 가정법원에 부부가 함께 방문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한다.
2) 그리고 약 한 달간의 숙려기간 이후(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경우는 3개월의 숙려기간), 통지받은 협의이혼 확인기일에 가정법원에 한 번 더 함께 출석하면 된다.
3) 마지막으로 3개월 이내에 주소지 관할 사무소에 이혼신고를 하면 정말 끝인데, 대개는 당일에 이혼신고도 함께 한다.
단! 이혼신고를 하지 않으면, 협의이혼 확인서는 무효가 된다.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다시 해야 한다.
'이혼 결정(= 이혼 통보) → 내용 협의(= 재산분할로 싸우기) → 가정법원 방문 → 6주 간의 숙려기간 → 협의이혼 확인기일'의 과정에는, 나의 경우 4~5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6주 간의 숙려기간 동안은 하루하루가 정말 느리게 갔기 때문에, 리셋(reset)을 하고 'day1'부터 다시 시작할만한 확신은 없었다.
남편도 이에 수긍했고, 협의이혼확정기일, 가정법원으로 향했다. 6주 전, 서류를 제출하러 처음 가정법원을 방문했을 때의 우리와, 현재의 우리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6주 전 우리는 서로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조차 하지 않고, 아예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는 낯을 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6주가 지난 현재, 남편은 '천천히 와, 내가 먼저 가서 접수해 놓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카톡 할게'라고 말하고 있었다.
협의이혼 방법 등을 알아보느라, 어떤 블로그 글을 읽은 적 있는데, 그 글에 의하면, 가정법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약 30분의 대기 후, 판사가 있는 방에 들어가 '이혼 의사가 있는 것이 맞습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변만 하면 끝이 나는데, 대기시간 동안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등을 돌리고 냉랭하게 앉아 대기하고 있는 부부도 있었고, 꽤나 사이가 좋아 보이는 부부도 있었는데 우리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었다.
어떤 부부는 이혼 변호사와 함께 참석했는데, 변호사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앉아,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노력하며, 잘 될 거라고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 주고 있었다.
어떤 부부는 복도에서 얼굴을 붉히며 싸워댔고, 언성이 높아졌는데, 그 소리는 대기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다른 부부들은 싸우는 소리에도 크게 개념치 않고, 묵묵히 대기를 이어갔는데, 가정법원 대기실에 모인 몇십 쌍의 부부 중, 그 상황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또 다른 부부는 참 앳돼보였는데, 아내의 어머니가 동석했다.
"이혼신고 끝나면, 약속한 돈 1원도 틀리지 않고 바로 입금해 줘.'
남편의 이 말이 시발점이 된 듯했다.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큰 불이 되듯, 대기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머, 어머, OO(사위)아,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우리 딸 휴대폰을 갑자기 왜 뺏어가서 그러는 거야. 얼른 휴대폰 좀 돌려줘."
어머니가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들어보세요'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는 것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빨리 은행 앱 켜라고. 은행 앱 켜서 잔액 나한테 보여주라고!"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남편은 아내의 휴대폰을 뺏은 뒤, 손을 높이 올려 들어, 키가 작은 어머니와 아내가 휴대폰을 가져갈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알겠으니까 진정하고 말로 하자. 휴대폰 나한테 주고 자리에 좀 앉아봐."
아내는 다리를 다쳤는지,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있었고, 그래서 그 상황이 더 벅차보였다.
"어머! 왜 이럴까 정말. 어머 나를 밀치는 거야? 지금 여기 CCTV 다 있어. OO(사위)아, 네가 지금 하는 행동 다 찍혔어. 이걸로 고소할 수도 있어. 제발 그만 좀 해. 여기 좀 도와주세요. 갑자기 휴대폰을 뺏어가서 돌려주지를 않고 저를 밀쳐대요. 직원분들, 좀 도와주세요!'
어머니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관계자가 와서 상황을 듣고, '어머니도 좀 진정하고 떨어져 앉으시고요, 더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 남편 분도 휴대폰 돌려주고 앉으세요. 협의이혼 시에는 판사가 재산 분할 등에 관여하지 않으니, 두 분이서 알아서 해결하셔야 해요. 곧 있으면 판사실에 들어갈 테니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세요.'라고 말을 하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가정법원 대기실에 있는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딱히 놀라지도, 큰 반응을 보이지도, 그들을 말리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그런 상황이 충분히 펼쳐질 수 있다며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공간, 다른 장소였다면 그런 상황이 난동이나 소란처럼 느껴질 법도 한데, 가정법원에서는 그저 안타까움만이 남았다. 이 상황에서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어머니를, 남편을, 아내를 멋대로 판단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차분하게 그들을 기다려줄 뿐이었다. 그들의 인생의 한 순간을.
잠시 후, 나와 남편의 번호가 불리고 판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협의이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1분 만에 확인서를 받아 들고 나왔다.
"확인서 하고 이혼신고 서류는 네가 보관하고 있는 게 낫겠지? 3개월 동안 네가 보관해 줘."
남편은 나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