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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웰제이드 Aug 10. 2024

이제라도 사과하면 받을 거야?



  "만약 남편이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하면 사과를 받을 거야?"

  6주 간의 숙려기간이 끝나기 전, 남편은 대화 신청을 했고, 나는 '이제 남편과 잘 이야기해서 마무리 매듭만 잘 지으면 되. 그럼 정말 끝이야!'라고 누군가에게 말했는데, 이 말을 들은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응, 나는 사과 받아."

  그 질문을 듣고 1초도 지나지 않아 나는 바로 그렇게 할 거라고 답했다. 그 순간, 그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해보지도 않고, 입이 먼저 움직여서 말이 튀어나왔다. 되레 너무 빨리 답변한 나 자신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그러면서 이혼 이야기로 남편과 나, 서로의 감정이 극에 치달았을 때,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듣고 싶어 구걸을 하다시피 했던 나의 과거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제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안 돼...? 우리 이제 이혼하기로 했고, 협의할 내용들도 다 정리했고, 각자 살 집 구해서 새 출발하면 그만이잖아.'


  결혼생활을 하며, 나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형식적으로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노력을 하는 편이었으나, 지독하게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신혼생활 내내 '미안해'라는 말을 번도 하지 않았던 그가 원망스러웠고, 덕분에 '화병'이 이런 거구나, 하고 직접 앓으며 알게 됐다. 남편과 이혼을 하더라도, 우리 관계를 끝내더라도, 그의 사과 한 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폭풍 치는 마음이 좀 잠잠해질 것 같았다.


  그러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응'이라고 빠르게 답한 것은 그럴만했다. 나는 항상 확고했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미안해' 세 글자뿐이었다. 그 말 한마디면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피해자 코스프레 좀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 말은 순식간에 내가 피해의식을 가지고 감정만 호소해 대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피해를 당했으니 피해를 당했다고 말을 하는 건데, 그걸 피해의식이라고 호도한다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정말 (말로) 맞았으니,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느껴져 속상하고 아팠다고 말한 것뿐이고, 나를 (말로) 때렸으니, 때린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인데, 나는 항상 피해자인 척하는 사람이 될 뿐이어서 무력해졌다.

  나중에 부부상담을 하며 알게 된 것인데, 사람들은 누구나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싫어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 마련인데, 남편은 유독 본인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에 민감한 사람이었고,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두 가지 종류의 사람으로, 이분법으로 구분을 하는 그였다. 남편에게 그의 아버지는 명백하게 '나쁜 사람'이었고, 그는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겠다고 평생을 다짐해 왔기에, 나에게 한 말들과 행동들을 인정하면,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한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의 아버지를 닮는 것 같아, 끝끝내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이제 와서 사과를 하면 받는다고? 사람은 안 변해. 잠깐일지도 몰라."

  나에게 질문을 했던 그는 나의 답변에 놀란 눈치였다.


  "나는 인정하고, 사과하고, 함께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면, 그게 전부야. 우선 '미안해'라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노력을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 세 글자 안에 많은 것이 담겨있잖아. 우리는 보통 관계도 아니고 부부니까, 서로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니까, 서로 노력하려는 마음만 잃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의 '만약에~' 질문에 답변을 하긴 했는데, 그런 일은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근데 어차피 그런 일은 안 일어나. 남편은 절대 사과 같은 거 할 리가 없어. 할 사람이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기 전에 진작 했겠지."


  그리고 '만약에~'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남편이 진심으로 사과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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