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남편이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하면 사과를 받을 거야?"
6주 간의 숙려기간이 끝나기 전, 남편은 대화 신청을 했고, 나는 '이제 남편과 잘 이야기해서 마무리 매듭만 잘 지으면 되. 그럼 정말 끝이야!'라고 누군가에게 말했는데, 이 말을 들은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응, 나는 사과 받아."
그 질문을 듣고 1초도 지나지 않아 나는 바로 그렇게 할 거라고 답했다. 그 순간, 그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해보지도 않고, 입이 먼저 움직여서 말이 튀어나왔다. 되레 너무 빨리 답변한 나 자신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그러면서 이혼 이야기로 남편과 나, 서로의 감정이 극에 치달았을 때,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어 구걸을 하다시피 했던 나의 과거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제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안 돼...? 우리 이제 이혼하기로 했고, 협의할 내용들도 다 정리했고, 각자 살 집 구해서 새 출발하면 그만이잖아.'
결혼생활을 하며, 나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형식적으로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노력을 하는 편이었으나, 지독하게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신혼생활 내내 '미안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가 원망스러웠고, 덕분에 '화병'이 이런 거구나, 하고 직접 앓으며 알게 됐다. 남편과 이혼을 하더라도, 우리 관계를 끝내더라도, 그의 사과 한 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폭풍 치는 마음이 좀 잠잠해질 것 같았다.
그러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응'이라고 빠르게 답한 것은 그럴만했다. 나는 항상 확고했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미안해' 세 글자뿐이었다. 그 말 한마디면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피해자 코스프레 좀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 말은 순식간에 내가 피해의식을 가지고 감정만 호소해 대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피해를 당했으니 피해를 당했다고 말을 하는 건데, 그걸 피해의식이라고 호도한다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정말 (말로) 맞았으니,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느껴져 속상하고 아팠다고 말한 것뿐이고, 나를 (말로) 때렸으니, 때린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인데, 나는 항상 피해자인 척하는 사람이 될 뿐이어서 무력해졌다.
나중에 부부상담을 하며 알게 된 것인데, 사람들은 누구나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싫어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 마련인데, 남편은 유독 본인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에 민감한 사람이었고,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두 가지 종류의 사람으로, 이분법으로 구분을 하는 그였다. 남편에게 그의 아버지는 명백하게 '나쁜 사람'이었고, 그는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겠다고 평생을 다짐해 왔기에, 나에게 한 말들과 행동들을 인정하면,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한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의 아버지를 닮는 것 같아, 끝끝내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이제 와서 사과를 하면 받는다고? 사람은 안 변해. 잠깐일지도 몰라."
나에게 질문을 했던 그는 나의 답변에 놀란 눈치였다.
"나는 인정하고, 사과하고, 함께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면, 그게 전부야. 우선 '미안해'라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노력을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 세 글자 안에 많은 것이 담겨있잖아. 우리는 보통 관계도 아니고 부부니까, 서로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니까, 서로 노력하려는 마음만 잃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의 '만약에~' 질문에 답변을 하긴 했는데, 그런 일은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근데 어차피 그런 일은 안 일어나. 남편은 절대 사과 같은 거 할 리가 없어. 할 사람이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기 전에 진작 했겠지."
그리고 '만약에~'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남편이 진심으로 사과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