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나눌 곳이 없었다.
'유진이는 내년 초에 결혼이라 결혼준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래, 굳이 얘기하지 말자.'
가까운 친구라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처음으로 이혼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유부녀 지인 정도였다. 그마저도 남편과 가정법원에 가서 협의이혼신청서를 제출했을 무렵이니, 한동안 혼자 끙끙 앓았다.
나이가 들다 보면 찾아오는 '시기'가 있단다. 친구 결혼소식이 들리며 청첩장을 받게 되는 시기, 누구네 아기가 태어나고 벌써 돌이 지났다더라 하는 시기, 친구 부모님 상을 당했다는 연락이 많아지는 시기, 친구 자녀들이 결혼하는 시기 등과 같은 것이다.
지금 나의 시기는 '결혼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청첩장 모임이 잦아지는 시기'이다. 심지어는 결혼을 하지 않은 지인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나기가 어려웠다. 절반은 이혼할 만큼 이혼율이 높은 시대라고는 하지만, 정작 내 주변에서는 내가 처음이다. 유일하게 참고할 수 있는 건 <나는솔로-돌싱편>, 아니면 <돌싱글즈-MZ세대편> 같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의 이혼 관련된 글을 찾아 읽기도 했었는데, 대부분 배우자의 외도와 관련된 글이 많았던 것 같고, 이혼의 '과정 중'에 있는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몇 개의 글은 고맙게도 길라잡이, 또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러다가 한 커뮤니티 플랫폼에서 '결혼과 이혼의 경험, 그에 관한 생각'을 나누는 모임을 발견했다. 나에게는 딱이었다. 왜냐면 나는 서류상 이혼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엄연히 말하면 기혼이긴 하지만, 사실상 미혼도, 돌싱도 아닌, '이혼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이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분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모임입니다'라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에 더 제격이라고 느꼈다. 돌싱들을 위한 모임 같은 것은 있었지만, (이혼을 하고 나서도) 나에게는 맞을 것 같지도 않았을뿐더러, '새로운 만남'이 아닌 '현재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며칠을 고민하다 신청을 했다.
또, 이혼을 앞둔 나 자신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 상황과 나의 감정을 이야기로 꺼내서 말이나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 고민을 했지만 일단 용기를 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혼'이라는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저마다의 사연은 천차만별이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모두가 달랐고, 이혼을 하게 된 이유도 달랐으며, 이혼 후 혼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양과 형태도 달랐다.
첫사랑과 10년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그녀가 바람을 펴서 이혼을 했고, 현재는 새로운 사랑을 다시 시작했다는 사람,
전 여자친구가 이혼가정에서 자랐는데, 그녀를 늦게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찾아온 사람,
현재 동거하고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데, 그전에 현실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사람,
해외에서 결혼생활을 하다가 정작 한국에 돌아와서 이혼을 했고, 이혼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어떤 사건으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한 번도 인정받은 적이 없다며 감정을 토해낸 사람 등 다양했다.
결혼 후 숨겨진 빚과, 온라인 도박 이력, 성매매 이력 등이 드러난 배우자와 어렵게 이혼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는 남편의 희망고문 때문에 이혼 과정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남편은 도박을 끊겠다, 이전의 실수들을 다시 거듭하지 않겠다, 부부상담도 같이 열심히 받겠다고 말했고, 아내였기에 그 말을 믿고 같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그는 변하지 않았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마음은 널뛰기하듯 높이 올라갔다가 뚝 떨어지기도 하며, 희망과 실망의 연속이었을 것이며,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은 나와 같이 이혼하는 중이었는데, 이혼과 더불어 아이의 양육을 두고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인 것이 너무나도 느껴졌고, 남일 같지가 않았다.
"사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어요. 정말 죽어버릴까도 생각했어요. 아내와 그녀의 가족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대놓고 무시하고 공격해 댈 때, 나는 뭘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털어놓았다.
사실, 죽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내가 이 정도로 힘들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갈 수도 있고, 전혀 공감되지 않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분위기를 삽시간에 무겁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달랐다.
"사실... 저도요. 저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진짜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구나 알아차렸을 때, 날 응원하고 힘이 되어주는 가족들이 떠올라 상담센터로 곧장 향하긴 했지만요."
내가 그의 말에 덧붙여 말했다. 평소에 '더워 죽겠다', 또는 '힘들어 죽겠다'와 같은 표현도 아예 안 쓰는 나였기에, 나에게 죽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왔을 때 스스로도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다른 한 사람도 덧붙여 말했다.
"여기서는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면 죽고 싶다는 생각 다 한 번쯤은 해봤을 걸요? 그만큼 우리 모두 힘든 일을 겪어온 거죠. 다들 고생 많았어요."
이혼을 통보받고, 돈에 관한 것을 협의하고, 전쟁을 치르는 그 과정 중에도 일상은 굴러갔다. (굴러가긴 했다.) 출근을 했고, 당장 나가서 살 집을 보러 다녔고, 지인 모임에도 나갔다.
다만, 길을 걷다가도 엉엉 울어댔고, 운전을 하다가도 눈물이 쏟아질 뿐이었다. 그래서 글과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개인상담을 받고, 일주일에 다섯 번은 운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나의 이혼을 제외한 다른 이야기들을 나누고, 살아남으려 발버둥을 치고 온갖 노력을 했다.
남편이 이혼 통보한 것을 번복할 줄도 모르고 협의이혼 확정일자 받기 D-day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내 나름대로의 살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나와 비슷한 고민과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 것은 큰 치유가 되었다. 단순 푸념이나 시세 한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간만에 마음이 채워지는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