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그리고 갑질

by 자루

설날 풍경


올해도 5일 설날 연휴가 지나가고 있다. 예외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이틀 동안 뵈었다. 설전날은 준비로 모였고, 당일은 모여서 추도 예배드리고,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드리고, 아이들의 세배도 받았다. 어머니가 점점 연로해지시면서 시장에서 완성된 먹을거리를 사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시장에서 파는 각종 즉석 먹거리들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게 옛날보다 비싸졌다. 특히 전집과 만두집이 성황이었는데 전집에는 전을 튀겨내고 구워내는 많은 인력들로 손님보다 많아 보였다. 이 들의 인건비도 예전 같지 않아 최저시급 그 이상의 훨씬 많은 시급으로도 숙련된 인력들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음식의 식재료비 보다 인건비가 더 많이 차지해 가는 아주 선진국형 모델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


표제의 두 단어는 2000년 대 이후의 진보와 보수를 포괄하는 키워드였다. 서비스는 내가 밥벌이를 하는 수단이다. 나의 헤드헌팅 직은 제품 혹은 제품 서비스가 합쳐진 형태의 재화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서비스로만 보수가 책정되는 일이다. 식당에서 흔히 밥반찬 음료 등을 덤으로 내어주며 하는 말이 "서비스예요."그래서 우리에겐 서비스는 공짜 혹은 조르면 주는 것 그리고 후려칠 수 있는, 거의 공짜로 쥐어짤 수 있는 것으로 다가왔었다. 거의 전 산업분야에서 사람이 하는 서비스는 협상으로 후려침의 대상이고 착취의 대상이었다.


서비스의 현실


나의 서비스에 대한 정의를 바로잡게 된 계기는 독일 이태리의 노동자들과 일할 때였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일을 끝내면 고객에게 자신들 일의 청구서를 시간 단위도 아니라 30분 단위로 필요하면 출퇴근 분까지 계산한다. 그래서 그들의 공급회사가 공급한 물건 부품 기계 설비와 그들이 한 노동량을 에누리 없이 청구한다. 저녁, 심야, 토요일 일요일, 주말 야간마다 노동의 임률이 서로 달라서 유럽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일을 시키면 청구서 폭탄을 맞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서비스에 관념이 갑질 심하면 미투까지 양산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서비스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미투와 갑질은 설자리를 잃는다. 오래전 유럽 노동자들과 일할 때 가졌던 서비스에 대한 정의가 서게 되는 요즘이 대단히 역설적이게도 갑질과 미투가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밑바닥엔 동학혁명, 3.1 운동, 제주 4.3, 419, 518, 6월 항쟁, 촛불혁명 그리고 빛의 혁명으로 우리 저변에 깔려있기도 하다.

유럽도 노동이 껌값도 못한 적이 있었고 노동이 제대로 노동값을 받게 된 것은 그리 긴 역사도 아니다.


서비스의 길


산업이 고도화된다는 의미는 3차 산업 즉 서비스 산업이 발전한다는 것이고 우리 자녀세대 중 반 이상이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의미이다. 서비스가 후려침의 대상, 착취의 대상이 계속된다는 의미는 여전히 우리 우리 자녀 세대 역시 갑질과 미투 시대에 계속 산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와 자녀세대를 위해서 서비스에 대한 정의가 바로서고 삶에서 바로바로 적용되었으면 하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희생하며 보여주셨던 모습은 서비스에 계속 녹아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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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의 개념 변경 이에외 갑질이 어덯게 해야 근절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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