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장전하고 있는 탄환에 대하여

맥거핀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리고 체호프의 총

by 고진오

맥거핀(MacGuffin)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영화에서 고전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들이다. 서로 대조되는 이 기법들은 잘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으로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맥거핀은 '무의미해서 매력적인 것'으로, 주로 영화 초중반에 활약한다. 서사를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종국에 그것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허무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영화 기생충(Parasite, 2019)에 등장하는 '산수경석'이 그 사례다. 영화 초반, 명문대생 친구 민혁이 기우에게 선물하며 "이 돌은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져다준다"라고 말한다. 이후 이 돌은 기우가 부잣집 과외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이자,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기우는 홍수가 난 집에서도 이 돌만큼은 꼭 챙겨 나올 정도로 집착한다. 하지만 결국 이 돌은 행운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흉기로 전락한다. 영화의 마지막, 기우는 돌을 맑은 계곡물에 다시 내려놓는다. 여기서 돌은 그 자체로 아무런 힘이 없다. 관객과 주인공은 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그저 욕망을 투영한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너무 유의미해서 허탈한 것'으로, 주로 영화 결말에 등장한다. 이야기 속 갈등을 강제로 종결시키며 다소 개연성 없지만 사건의 해결을 도우며 편리함을 주는 도구다. 영화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1993)의 클라이맥스인 주인공 일행이 벨로시랩터들에게 포위되는 상황, 무기도 없고 퇴로도 차단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 순간, 화면 밖에서 쿵 소리와 함께 티라노사우르스가 갑자기 나타나 랩터를 낚아챈다. 거대한 덩치의 공룡이 실내로 소리 없이 잠입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이 압도적인 포식자의 등장으로 랩터들은 전멸하고 주인공들은 무사히 탈출한다. 이처럼 위기 상황을 외부의 절대적인 힘이 해결해 버릴 때 우리는 허망하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현실에도 이와 같은 경우가 많이 속출한다. 중요한 것은 맥거핀은 분명 존재하기에 인지해야 하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단연코 존재치 않기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며 산다. 각종 소셜미디어와 기성 매체의 영향으로 어느새 정보의 분류와 식별조차 어려워진 판국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우리는 화려한 외모와 물질 가치를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자산과 직업, 경력 등의 모든 배경이 수치화되어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을 나누는 데 사용된다. 언론과 미디어가 집중 조명하는 주제만이 보편적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들의 가치 판단 기제는 자율성을 잃어 가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근원적 가치와 본질에 다가서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는 자기 수행과 성찰을 통해 인생 속 맥거핀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핵심은, 맥거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맥거핀에 대한 의도적 무시에 있다. 맥거핀이 인생 속 깊게 자리 잡아서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이목을 쏠리게 하도록 방치하지 말자. 그것은 결국 무의미하다. 무의미함에 속아 참된 소중함을 놓치면 안 된다. 물론 맥거핀은 겉으로는 중요해 보이는 듯하다. 때로는 삶이란 서사를 전개함에 있어서 동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내 인생의 맥거핀을 인지하고, 그것이 가지는 허영을 벗겨내는 것이다.


반면, 인생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꼬이고 꼬일 대로 놓인 상황을 단번에 해소해 줄 기적 같은 해결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꼬인 매듭을 푸는 가장 빠른 방법은 꼬인 역순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길고 지루하다. 그럼에도 해결을 보장한다. 우리는 많은 미디어에서 '동기부여'라는, 혹은 '성공'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사람들에게 역설하는 콘텐츠를 보게 된다. 성공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빠른 시일에 모두가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그런 화술에 현혹되기 쉬운 세상이다. 단 며칠 만에 부를 얻고, 성적이 오르고, 실력이 상승하게 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된다. 빠르게 자극적인 정보만을 수용하고자 하면 어느새 인내하고 감내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기 어려워진다. 성취는 꾸준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 과정은 지치고 힘들다. 온갖 유혹과 고통, 잦은 실패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는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야기된다. 각고의 노력을 다하여도 안 되는 일이 인생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정과 수용이 필요하다. 해결은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그 해결은 지난히 어려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순간이 값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없다.


맥거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이어 체호프의 총(Chekhov's gun)이라는 영화적 도구가 있다. "1막에서 총을 보여줬다면, 3막에서는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라는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가 고안한 개념으로, 앞선 두 개념과 달리 가장 논리적이고 정당한 결말을 이끌어내는 장치이다. 이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뜬금없지도, 맥거핀처럼 무의미하지도 않다. 이것은 바로 필연성을 자아낸다. 우리는 이처럼 방대한 인생의 찰나의 순간이라도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지금 인생은 이후의 막에서 발사될 탄환이다. 그 막 간의 간격은 길 수도, 때로는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멀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완결이 일어날 때, 우리가 빚어낸 노력의 성과는 빛날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인생 속 맥거핀을 인지하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배제하며 결국 서사의 완성을 이끌어내는 저마다의 체호프의 총을 소지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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