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무주택 탈피를 위한 사유의 자가 건축

사고의 방향성에 대하여

by 고진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자기 집 마련' 중독 사회다. 평생을 바쳐 빚을 갚고 자산을 축적한다. 비로소 등기부 등본에 자신의 이름이 적힐 때, 사람들은 안도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물리적 주거 공간에 대한 열망에 가려져 정작 '정신적 주거 공간'은 도외시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방에 입주한다. 그곳에 이미 자리 잡은 '성공'이라는 벽지, '보편적 행복'이라는 조명 등의 인테리어는 아무 의심 없이 수용된다. 그리고 사회라는 집주인에게 매번 월세를 내며 그 자리를 지킨다. 어쩌면 자신이 세입자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사람들은 '자아의 외주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의 확산으로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기술 발전의 이면에 놓인 주체성 말소를 지적하고 희미해가는 '나'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유의 자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 건축술 첫 번째는 '별점의 소거'다. 우리는 효율을 내세우며 취향과 감각마저 위탁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보다 타인의 입맛에 맞는 별점 5점짜리 식당을 찾고, 일단 유행한다면 장시간의 대기줄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별점을 소거하고 나만의 취향을 찾아야 한다. 설령 별점 1점짜리 경험을 할지라도, 발품을 팔아 나만의 별점 5점짜리를 찾는 수고를 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고유한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발견되고 기억된 정보가 나만의 고유성을 확립해 준다.


두 번째는 '내가 정의하는 사전' 만들기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이미 정의된' 개념에 적응되어 있다. 성공은 물질가치에 종속되어 있고 행복은 그러한 성공을 담보로 한다. 재능은 어느새 타고난 자들의 특권으로, 노력은 갖지 못한 자의 미련한 몸부림이 되었다. 이런 사회적 관습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나만의 고유한 개념을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령, '행복'은 운동을 끝내고 먹는 식사시간의 소중함으로, '성공'은 사랑하는 이들을 부양할 능력의 소유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인본가치를 훼손하는 탈규범적 정의는 배제해야 한다. 다만, 도덕도 마찬가지로 이미 있는 규율에 질문을 던지고 재정의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역이 아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그렇기에 그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은 존재하는 우리의 몫이다. 나만의 사전은 끝없는 지적 호기심과 통념에 대한 의심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내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개념이 있는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어떻게 정의됐는지 문답하며 스스로 반추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의 결실은, 탄탄한 자기 서사를 기반으로 한 흔들림 없는 자아의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축술은 '감춰진 활동'이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기능은 어느새 주객전도 된 지 오래되었다. 내가 활동하는 일상에 좋아요가 눌리는 것이 아니라, 좋아요를 받기 위해 일상에서 활동을 만들어내는 판국이다.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보다 많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받을지 고민하며 자신의 삶을 꾸민다. 이는 화면 밖의 진짜 나를 잃게 한다. 감춰진 활동은 이와 반대된다. 소셜미디어 용도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서 행하는 활동이다.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공부하고 독서를 한다. 단, 여기에는 어떠한 외부 공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고독하게 자신과의 상호작용을 일삼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허영심이 벗겨진 순간에야 우리는 본래 추구하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누군가는 반문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비효율적이라고. 하지만 주체성의 확립은 존재의 확인이다. 이 중요하지만 험난한 길을 걸어감에 있어, 비록 그것이 가시밭길일지라도 우리는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유의 자가 건축물은 단단하고 세련된 벽돌집이 아닐 수 있다. 심지어 허술하고 빗물 새는 초가집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확신한다. 그 빗물로 젖을지언정 우리의 본질과 주체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흐릿한 물줄기 뒤에는 화창한 날씨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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