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마리의 늑대이야기와 장자의 나비꿈
교회를 다니시는 장모님은 가끔 나에게 ‘말에는 힘이 있다. 그 힘에 권세가 있다~’라며 이야기를 하신다. 나도 거기에는 공감하고 그렇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서도 오늘 새벽 달리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이고 죽겠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2km를 내 평균속도보다 빠르게 쥐어짜내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100미터가 1,000미터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빠르게 가던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 흘러갔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나서 터져 나온 그 외마디에 갑자기 장모님이 말씀하셨던 말의 권세가 중요한데 내 무의식 속에 그 말이 저장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딸아이에게도 “너의 마음속의 착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어야 해~”라면서 인디언(체로키족) 우화에 빗대어 늘 긍정의 사고를 하라고 이야기했었는데 나도 그러지 못하고 있었음에 좋은 롤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언 우화 : 두 마리 늑대 이야기 (The Two Wolves)
어느 날,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사람 안에는 왜 때때로 선한 마음이 있고, 또 어떤 때는 화나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자 체로키족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착하고 평화롭고 사랑이 가득하지.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화가 많고, 질투하고, 탐욕스럽고, 두려움과 증오에 가득 차 있지.”
손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 두 마리 늑대는 누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죽겠다면서 오늘의 달리기 목표를 다 채우고 나서 너무 개운했다. 너무 피곤해서 눕고 싶었지만 깨지 않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회사 헬스장까지 왔다. 신발 끈을 매고 스트레칭을 하고 비로소 러닝머신에 오르고 나서 조금씩 몸을 움직이면서 잠이 깼다. 시작에서 끝나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힘들긴 했다. 그렇게 단련의 시간을 통해서 점점 더 빨라지고 강해지고 있다. 비록 부정적인 언어와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렇게 단련의 시간을 통해서 다시 긍정의 언어와 생각으로 전환하는 훈련을 다짐한다. 최근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에서도 이야기한 인간이 인지하고 있는 현실과 꿈을 통해서 어렴풋한 이미지를 전해주는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처럼 내가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닌 그 내면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그 의미와 가치를 다시 고민해야겠다.
장자의 제물론에 소개되는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처럼 때로는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가 있다. 자아를 찾기 위해 열망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갈망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지금 보이는 것만 쫓고 보이지 않는 기본에 소홀히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 답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의 자세였다.
옛날에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정말 기쁘고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니, 분명히 장자였다. 그러자 그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장자인데, 과연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되어 내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