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할머니들이 집에 놀러 오면 침을 뱉어대며 집에 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할머니의 품에서 오냐오냐 자라서 인성이 최악으로 평가받는 동내 아이였다. 자식에 대해서 훈계하고 안 좋은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는 엄마도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고개를 절레 절레 하신다. 사촌 형이 거친 표현으로 “넌 그때 정말 쓰레기였어~”라고 하면 정말 군소리 없이 “그래 맞아..”라며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해 요즘엔 바른 인간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늘 인사를 해서 사람들이 착한 사람이라고 여길 만한 이웃 주민으로 보이고 있다.
그런 나의 요즘의 바른 모습을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고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범절을 잘 지키라고 귀에 딱지가 지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도 애들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짜증 내고 말썽을 부릴 때를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다가도 말도 안 되게 악동 같았던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를 주장하던 성인들의 이야기도 무색하게 악하다가도 선해 지기도 하고 상황에 맞추어 변화한다.
내 자식들의 인성의 됨됨이를 따지다가도 TV이나 미디어 매체에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비추어 보다 보면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얼마 전 읽었던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에서 방송국 사람들이 김영하 작가에게 알쓸신잡 시리즈를 권장하며 한번 그 길에 들어선 사람이 방송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당연한 듯이 그 선택을 포기할 수 없는 옵션임을 주장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자본주의의 삶에서 인기라는 것은 곧 돈이고 그 돈은 삶의 평온과 풍족감을 주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그 선택을 쉽사리 밀쳐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자본주의에는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인성의 중요성에는 소홀히 여기는 요즘 세대의 삶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꼴통 같았던 나의 삶을 반성하면서 나의 자녀들이 부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