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퇴사

회사원

by 고카


‘딩동~! 잠깐 와봐라~’

’이거 맞나?‘ 여랑 여랑 와 다르노?’

‘딩동! 이거 다른 케이스도 만들어라~‘

’와바라~‘

딩동 딩동 딩동.. 메신저 메시지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반짝이는 알림과 함께 ‘딩동‘이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쓰레기 상사 때문에

딩동이라는 말이 싫어졌다.


”누구야~ 니 벌써가노? 슨배들 집에 못가고 일하고 있는데?“

“누구야~ 이거 다시 해라~”

누구야~. 누구야~ 하루에 수십 번씩 내 이름을 불러대는 쓰레기 상사 때문에 내 이름을 누가 부르기만 해도 두리번거리며 긴장하고 진땀을 뺏다.


상사복이 없어서 신입사원 때 동기들 적응 기간이라고 일찍 퇴근하는데도 부러워하기만 하면서 갈굼으로 시작했던 회사 생활이었다. 신입사원의 얼타는 모습이 사라져 갈 무렵이 된 1년 정도가 지나고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을 했다. 나에게 rawdata 노가다 숙제를 던지고 모두 사라지고 홀로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파티션 건너 건너에 듬성듬성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행복해 보이는 거 같지도 않고 일에 치이고 찌들어 잿빛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고 부장 차장님들이 저러고 있는 게 꼭 미래의 내 모습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퇴사에 대한 불씨가 싹트게 되었다.


“형~ 잘 지내세요? 저 누구예요. 형 아직도 거기서 일하고 계셔요? 제가 그쪽 일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 MBTI도 다시 해보고 심리검사도 받아보았다. 어렵게 들어온 회사를 뿌리치고 나가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는 나를 믿었다.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내 성격에 걸맞게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원과 장사는 결이 다른 업이지만 사교적이고 활달한 성격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잘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 당시 동대문에서 의류사업으로 대박을 쳤다는 고등학교 선배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해서 연락을 했다. 대박을 쳤다는 선배의 절친이자 함께 의류 업을 했었다는 나와 그나마 연락을 하고 지냈던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남대문에서 아동복 도소매 쪽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서 바로 그 주말에 서울로 향했다.


”형 장사를 하고 싶어요. 밑바닥에서부터 할 자신 있어요.“

”그럼 우리 사장님 한번 만나볼래? 마침 한 명 추가하려고 하거든“

그렇게 형의 사장님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어느 카페에 앉아서 배경을 설명했다.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설명을 듣더니 흔쾌히 함께 일해보자고 했다. 채용을 한다고 한들 그 사람도 나를 써가며 어떤 놈인지 더 보려고 하는듯했다.

동대문 남대문 의류 관련된 쪽의 일은 디자이너, 사입 삼촌 등 나름 주 종목의 영역이 나뉘어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직은 모르겠으니 해보며 결정하겠다고 했다. 거기에서는 이동의 효용성을 위해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지 선배는 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나의 면접 이야기와 이 바닥에 대해서 설명해 주겠다고 하며 저녁에 술을 한잔하자고 했다. 술자리에는 형의 여자친구도 함께 왔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했고 둘은 이 바닥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들도 대박을 꿈꾸며 일을 배우고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했다. 거친 그 바닥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단단히 마음의 결단을 하고 내려왔다.


회사에는 퇴사 통보를 했다. 이유를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동대문에 장사하러 갈 거라고 답했다. 지르고 보니 마음이 편했다. 나를 갈구고 힘들게 하는 상사들이 아저씨처럼 느껴졌다. 만류해 보고자 술자리를 만들어 회유를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주말에 집에 갔다. 그리고 부모님께 나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아버니는 말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아이고, 아이고~‘를 반복하셨다. 그다음 주 회사에 가니 인사과에서 나를 찾았다. 인사과 과장은 잠시 인사팀으로 오라고 하고선 나에게 A4 종이 한 장과 펜을 주었다. “여기에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적어보세요~ 무엇이든 좋아요.” 나는 순수히 종이에 내 역할을 적었다. ‘아들, 동생, 후배, 형, 사원, .... ’ 역할을 몇 개 적는데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역할이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하고 있는데 과장님이 나에게 본인이 가진 역할에 대해서 책임감을 얼마나 가지는지 물었다. 내가 가진 역할에는 항상 충실히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땐 왜 그 역할에 대한 질문을 했는지 몰랐다.


인사과장님과 단둘이 술을 하게 되었다. 인사과장도 힘든 자신의 사원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버지가 퇴직한 곳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의 처남이었다. 나를 어떻게든 만류해 보기 위해 비밀 특사를 보낸 것인데 그게 또 재미있게도 인사과장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사과장도 나를 말리지 못했다. 나의 단호함은 부러질지 몰랐다. 다시 주말이 되어 집에 갔다. 여전히 엄마는 ‘아이고’를 반복하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고 급기야 나를 보고 눈물을 터뜨리셨다. ”편하게 회사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면 좋은데 ~ 왜 사서 고생을 하냐. 엄마는 니가 편하게 회사 다니면 좋겠다~“ 엄마의 눈물이 나의 단호했던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정말 단 1도 결심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의 눈물이 마음을 바꾸게 했다. 시골에 사시다 보니 자식이 평범하게 사는 게 안전하고 행복한 것이라 믿으시기에 불쑥 와서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관둔다고 하니 걱정에 잠도 못 주무시고 마음고생을 하신 것이다.


그렇게 나는 15년째 회사원을 하고 있다. 부모님은 가끔 술안주로 꺼내어 내가 동대문에 안 가서 결혼도 하고 집도 얻고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했든 잘했을 거라는 자신이 있다. 설령 그때 갔더라도 고생은 했을지라도 내가 원하는 성공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정말이지 밤늦은 사무실에 초췌하게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선배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꿈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도 ‘내가 무얼 하면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을 뿐. 이제는 나의 퇴사 선언을 이전처럼 만류하거나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이젠 그들도 내가 나 스스로를 믿었던 것처럼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잘 견디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가끔씩 이런 질문을 접하게 된다. "꿈을 좇아야 할까요? 아니면 현실에 타협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나는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중요한 건 꿈을 절대로 잃으면 안 된다! 설령 그 꿈이 모호할지언정 말이다. 인생은 직진으로 가는 사람이 쟁취하는 것 같지만 꾸준히 한발 한발 가다 보면 원하는 곳에 가게 된다. 물론 수많은 우회와 재탐색의 과정을 통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당도할 수 있다.’ 나도 아직 가는 중이다. 중요한 건 나를 믿고 사랑하고 꾸준히 가면 되는 것!

인생은 잘 싸우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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