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시작하면된다 바로 오늘 지금 당장.
달리기는 나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좋은 매개체이다. 마음이 아플 땐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내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준다. 꽃게잡이로 유명한 베링해의 거친 파도처럼 드높은 파고로 출렁이고 그 파도가 나의 안녕을 앗아갈 듯 소용돌이치는 나의 감정을 잔잔한 호수로 만들어 준다. 내가 얻으려고 했던 물음에 대한 대답에 대해서도 답을 내어주고 때로는 즐겁고 신나는 기분은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주어 행복감이 오래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 달리기를 통해 나 스스로에게 도전을 하기도 한다. 마냥 감정을 달래는 도구로만 쓰이다가 어느새 나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성취를 이루게도 해준다. 길던 짧던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능력을 알게 되고 스스로 놀라며 감탄하고 엄청난 성취감과 행복을 얻게 된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그치며 주어진 훈련을 해내가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그 힘듦보다 얻게 되는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에 어느새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언덕위로 무거운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끝이없는 형별을 받은 시시포스처럼 달리기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자아 성찰과 깨달음이라는 좋은 역할을 했던 달리기는 어느새 나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되었고 그렇게 나의 SNS는 달리기 인증으로 물들어 간다. 그 과정을 통해 남보다 빠르고 남보다 강해지고 싶은 욕심 그리고 더 좋은 아이템을 얻고싶어하는 물욕이 어우러져 내가 왜 달리기를 하게 되었는지 달리기가 나에게 주는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잊게 된다. 그렇게 내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나 스스로를 다그치고 나의 수준과 기준이 아닌 남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어 달리기를 하면서 부상이 찾아오고 궁극에는 런태기에(달리기 권태기) 다다르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이 우리의 삶이지 않을까 싶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처음엔 나를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하다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하고 궁국엔 이별에 다다라 큰 아픔으로 끝나버리기도 한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되짚어 생각을 해본다. ‘왜 달리는가?‘ 그 질문의 본질로 더 깊이 들어가보면 ‘왜 사는가?’로 이어진다. 삶은 원래 고통이다. 시시포스가 제우스를 놀리다가 얻게된 형벌이라고 하지만 어찌보면 그 불행하고 잔혹한 형벌을 피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 속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고 있던 것이다. 달리기가 재미 있는거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다. 트레드밀을 만든 목적도 죄수를 고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우린 그걸 통해 우리는 의미와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지금 힘든가? 끝이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멈추고 싶은가? 그러면 끝이다. 그말은 기록이 없어진다. 걷든 뛰든 골인지점까지 가야만 기록을 얻을 수 있다. 기록이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수 있다. 그럼 그 기록은 누구의 것인가? 누구의 꿈인가? 내 삶의 꿈을 향해 멈추지 않기위해 글선수되기 100일 프로젝트를 하면서 벌써 1/10지점에 다다랐다. 하루 하루가 이렇게 빨리 간다는게 놀랍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의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는것에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거창할 거 없다. 그냥 시작하면된다 바로 오늘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