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마을에는 슈퍼가 없었다. 구판장이라 불리는 구멍가게가 학교 앞에 있었지만 그마저도 가려면 어린아이의 걸음으로는 30분을 가야 했다. 그런 나와 동생에게는 라면만 한 과자가 없었다. 장에 가시면 박스로 사다 놓은 라면을 우리는 생라면으로 먹기에 바빴다. 며칠이 안되어 라면 한 박스 반이 동나다 보니 장롱에 숨겨두신 적도 있었다. 동생과 나는 그렇게 매일 싸우고 다투다가도 라면을 찾기 위해서는 엄청 끈끈한 동맹군이 되어 라면을 찾아 나섰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좋아하던 라면은 나에게는 소울 푸드였다. 학창 시절 대학시절 군 시절까지 배고프고 궁핍했던 그 시절에 허기진 내 배와 마음을 달래주던 녀석이었다. 늘 맛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맛있었던 라면 몇 가지가 있다. 때는 06년에서 07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군 생활을 한창 하던 기간이었다. 나름 일병에서 상병으로 넘어가던 무렵이었다. 나는 운전병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부식차량을 도맡아 했다. 부식차량은 매일 새벽 식자재를 타러 오는 군부대 차량들을 안내하고 우리 부대의 부식인 식자재를 실어 오는 역할이었다. 그러다 보니 넉넉하진 않아도 필요한 것들은 조금씩 더 챙겨다 준덕에 취사병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 취사병 후임 녀석이 야간 위병소 근무를 마치고 들어왔는데 조용히 불러 나에게 라면을 끌 여주었다.
면의 두께는 스낵 면처럼 얇았다. 하지만 탄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짭조름한 맛이 나는 와중에 부드러운 크림의 맛이 살짝 돌았다. 신라면의 매콤하면서 면의 꼬들꼬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진라면의 조금 후덥한 면의 탁한 맛에 가미된 마일드한 짭조름한 맛도 아니었다. 계란이라면 수프에 잘 베었지만 지금의 불닭 카르보나라처럼 뭔가 퓨전적인 느낌의 라면의 맛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내가 부식으로 한 상자 더 얻어다 준 육개장 컵라면을 베이스로 만들었다고 했다. 가끔 그 생각이 나서 육개장 컵라면으로 끌 여먹어보아도 그 맛은 느낄 수 없었다.
지금도 라면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먹고 싶은 건 배달 앱으로 돈 걱정 없이 시켜 먹다 보니 그 곤궁함에서 오는 간절함이 없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맛있어하지 않는다. 단지 간편히 끼니를 때우는데 일품이구나 할 정도이다. 더 풍족하게 누리고 맛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가끔씩 삶에 지치고 시달리다 답답하고 울적해진 내 마음을 달래주는 건 여전히 라면만 한 게 없다.
없던 시절 어렵던 시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지만 왜 그 고생하고 힘든 시절의 추억과 맛이 그리운 걸까? 그 고통과 슬픔이 있었지만 흐르는 시간이 아픔 위에 추억이라는 이름의 새살로 자라나 아픔이 아닌 아름다운 그림으로 만들어 준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