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인줄 알았다. 하지만 운이었다.
집이란?
오늘은 무엇을 써 내려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SNS에 올려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몇몇이 의견을 주었지만 왠지 어그로를 끌수있는 제목까지 잘 지어주신 이전 회사 선배이자 인생 선배의 제안을 택했다.
부동산이 요즘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관심사이자 인생의 목표가 된듯하다. 나의 집을 한 채 마련한다는 것이 다가 아니라 입지 좋은 데에 좋은 투자로 미래의 부를 만들어주는 투자의 수단이 되었다. 본디 의식주가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주거요건은 삶의 질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디에 살 것인가는 현재의 삶의 만족도 뿐 아니라 자녀들의 미래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고 좋은 가격을 형성하는 것에 집이 주는 안락함보다 직주근접성(직장과 집의 근접성 즉, 출퇴근 거리/시간)을 좌우하는 교통,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환경을 좌지우지하는 학군이 큰 영향을 준다. 그 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내가 보는 것은 그 두 가지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요소요소 마다의 가격이 반영되다 보면 수억이 수십억이 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신혼집(첫 출발)
결혼을 준비하면서 집을 구할 때 나는 전세를 구하려고 했다. 내가 모아놓았던 6천에 집에서 해주신 3천을 더해 9천 정도가 내가 가진 시드머니였다. 대출을 하더라도 몇천 더해서 내가 가진 능력에서 신혼집을 꾸리려고 했다. 그런데 장인어른이 이야기했다. 복비에 이사 비용이면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더 이득이라면서 집을 사는 것을 권유했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연봉의 약 60~70%가 되는 돈을 저축해서 몇 년을 모은 돈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에 화도 나고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2013년 말부터 시작된 임장의 기간 동안에도 집값은 계속 올랐다. 몇 달 새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도래했고 집을 사는 게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심한 이상 집을 사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시세 평균보다 2천만 원을 싸게 구했다. 시세보다 싸게 구할 수 있었던 건 열심히 발품을 팔면서 부동산에는 언제든지 계약이 가능하다는 걸 이야기했고 나에게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2억에 샀던 집이 나의 첫 부동산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청약)
은행원으로 전주에서 일을 하는 선배들을 만났다. “누가 어디에 청약을 넣었데~”, “누가 어디 당첨되었데~‘” 시장에서는 청약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략 2015~16년에는 청약을 받아 피를 받고 분양권을 매도하는 게 성행했었다. 청약과 분양권이 무엇인지 개념도 몰랐다. 청약이라는 시스템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건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있을 때 나의 신혼집 주변에도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들이 있었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해보고 싶어 무작정 임신한 와이프와 모델하우스를 돌아다녔다. 분양 물건을 소개할 때 정형화된 공식처럼 교통과 입지에 대한 내용을 강조하지만 실질적인 그 효용성과 가치를 보는 눈이 없었다. 하지만 GTX라는 지하철 노선의 역사 바로 옆에 세워질 거라는 것에 혹했다. 그 당시 살던 21평의 신혼집에서 둘째까지의 가족계획을 고려하면 34평으로 이사는 언젠가 필요했고 아직 시공조차 하지 않고 분양권에 당첨되고 입주까지는 3~4년의 시간이 있기에 투자해 볼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청약을 넣었다.
로또 청약 1+1
나는 39평에 당첨이 되고, 와이프는 34평에 당첨이 되었다. 그 당시 너무 어렸고 시장을 몰랐기에 기쁨보다는 겁이 났다. 내가 감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34평을 선택하고 하나는 포기를 했다. 되돌이켜 보면 로또 두 장이 되었는데 한 장을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내가 공부하고 노력해서 얻는 기회가 아니다 보니 예정된 선택이었다. 그렇게 로또 한 장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다. 6억언저리에 분양된 아파트는 부동산 붐과 함께 15억까지 올랐고, 신혼집은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되고 5억 후반까지 상승했다. 자산 가치로 20억 대 부자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나의 노력은 크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내 실력이 아닌 단순히 시장의 흐름에 따라 올랐던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 거품이 꺼지면 나의 기쁨도 사그라들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직 그리고 이사
회사의 전망은 어두웠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직을 준비했다. 지방대에 스펙도 자격증도 변변치 않았기에 2년 넘게 고베를 마셨다. 삼성반도체에 최종 면접까지 다다랐을 때의 기쁨 그리고 탈락의 쓰라린 감정은 그간 들여왔던 노력과 시간이 허탈하고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격증을 다시 보강하고 결국 다시 우리나라 유수 기업 두 군데에 면접 과정을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더 나은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일산과 거리가 멀었다. 일산이 정말 살기 좋았는데 그래도 이기회를 빌어 더 나은 곳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산은 마약 같은 동네야 너무 좋은데 너무 외졌어 그리고 투자가치 없는데 사는 사람들은 너무 좋아해 그래서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어.”이렇게 일산을 표현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대로 나와 와이프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대안이 되기 위한 지역을 찾기 위해 우리 부부는 임장을 정말 열심히 다녔다.
광교, 정자동, 분당구, 동탄, 미사, 하남, 천호동, 풍납, 강동, 광진, 오금, 방이, 문정, 위례, 판교, 이매.. 정말 매일 부동산 지도를 펴놓고 각 동네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가격을 검토했지만 결국 자본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좋다고 느꼈던 일산은 거품이 빠지고 있어 20억을 도래했던 나의 자산 가치는 쭉쭉 빠지고 있었는데 반대로 내가 돌아다닌 동네는 점점 가치가 오르고 있었다. 아무래 주거 요건에 가장 키는 교육도 있지만 근처에 직장이 있는 게 부동산의 가격을 방어하는 큰 요소가 되었다.
잠실에 나도 살아도 돼?
그렇게 돌고 돌아 지금의 신축을 팔아야 이매의 구축에 평수를 줄여가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라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는 아이들의 생활 환경과 교육 환경을 가장 중요시했는데 그런 동네는 비쌌다. 결국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렇게 같은 경기도 수도권이라 하더라도 일산과 경기남부는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와이프가 잠실 주공 5단지 구축에서 몸빵을 하는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를 전달해 주었다. “오빠 이런데도 괜찮아?” 솔직히 가봐야 알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에 바로 잠실 임장을 나섰다. 매매는 23억정 수준이었으니 집 컨디션에 따라 전세는 5~8억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예산에서 고를 수 있는 조건의 집은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주공 5단지의 집을 10개 이상이나 돌아봤음에도 고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길 건너 장미 아파트나 한번 볼까? 하고 봤던 집에 살게 되었다. 잠실의 구축은 우리의 타협점이었다. 이가 아닌 잇몸으로 즉, 몸빵으로 아이들 클 때까지만 버티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잠실 살이가 되었다.
나도 잠실 사람인데
잠실에 살다 보니 내가 잠실에 사는 재력을 갖춘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꼭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냉정했다. 도무지 계산하려 해봐도 셈이 되지 않았다. 나가 가진 것과 현실의 가격의 차이는 롯데타워만큼이나 높아 보였다. 그렇게 늘 좌절하고 착각하고를 반복하며 구축의 삶에서 현타가 왔다. “서울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내 삶의 소중한 시간을 몸빵 하며 보내는 게 맞는가? ” 그런 와중에 첫째는 다시 이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보유한 금액에 맞춰 이사를 가고 싶지만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 시키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오고 가는 현타를 달래가며 잠실에 살아가는 잠실 이방인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다.
한때 20억이었던 나의 부동산 자산은 10억 수준이다.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서울 잠실의 집값을 쫓아가 붙잡기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능성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난 건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난 여전히 목마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을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계속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와 싸우고 있다. 계속 투자를 공부하고 회사 생활을 영위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요즘 나의 최대의 고민은 나를 찾는 것이다. 문제의 답은 나에게 있다. 잠실의 수십억 집을 살 방법을 묻는 게 아닌 진정한 나의 삶의 가치와 방향을 알고 싶다. 부를 얻고 재산을 증식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삶이 즐겁고 행복한 정신적인 풍요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작도 조촐했다. 그 조촐함이 지금까지 커진 것도 기적이다. 하지만 더 큰 기적을 바라며 욕심을 내며 내 삶을 갉아먹고 있는 내 모습을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나다움이 무엇이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 닿는다면 부는 따라올 것이다. 그 끝은 보이지 않지만 그 끝을 얻어내는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과 실력
나의 운은 이미 써먹었다. 그래서 이제 후반부에는 실력이 필요하다. 그 실력을 다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너무 나를 채찍질하기도 하다가 지치기도 하고 또 최근에는 건강까지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아 가고 있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본질로 돌아가 그 부를 정의하고 그것의 목적을 아는 게 중요하다. “너는 누구니?”
오늘부터 명상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의 답을 얻어낼 때까지. 그 답을 얻어 낸다면 진짜 나의 실력을 뽐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