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숙제와의 전쟁

by 고카


첫째의 3학년 입학에 맞춰 서울로 전학을 왔다. 서울이라 그런지 공교육 기관의 선생님이 아이의 수학 성적을 고려하여 학원을 권장을 했다. 사교육을 조장하는 공교육시스템이라니. 하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게 맞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채로 아이를 학원으로 내몰았다. 간단한 사칙연산에도 아이는 당혹스러워했다. 수학 문제집을 여러 권 풀면서 기계적인 수학 문제를 푸는 기계를 만드는 과정과 같았다. 처음에는 숙제를 함께 봐주면서 내 속이 타들어가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이유는 수학을 못해서가 아닌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그 과정과 환경에 익숙지 않은 아이가 계속 몸부림치면서 저항하는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걸 왜 해야 해? 하기 싫어!“라는 아이의 반문에 나 스스로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올바른 대답이 아닌 통상적인 영혼 없는 답변을 해주며 애를 달래고 숙제와 씨름을 했다.


4학년이 되고서는 제법 스스로 숙제도 잘하고 학습하는 태도도 자리가 잡혔다. 하지만 나를 빼닮은 첫째 녀석은 공부머리보다 잔꾀에 능했다. 적당히 눈속임을 하고 대충대충 했던 숙제를 와이프의 불시 검문에 걸리고 말았다. 그간 아이의 숙제에 손 떼고 있던 나에게까지 불똥이 떨어졌다. ’다 내가 잘못했네~‘라며 끌어 오르는 화를 삭였다. 새벽부터 회사에 출근해서 회사서 일하고 퇴근하고선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영어 공부하고 책 읽고 새벽엔 잠을 줄여가면서 운동하고 거기에 애들 숙제까지 봐주느라 너무 힘든데 본인의 사고에 맞지 않는다며 아이를 닦달하는 와이프 그리고 그런 엄마는 자기를 미워하고 싫어한다 생각하는 딸아이 사이에서 나의 감정은 쓸데없는 문제의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 와이프를 달래며 안방으로 보내고 아이 옆에 앉아 책을 보여 숙제를 봐줬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을 돌이켜 보았다. 숙제? 그런 건 한 번도 제대로 한 적도 없었고, 시험은 커닝을 했고 부모님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오죽했으면 방학마다 놀러 왔던 사촌 형이 그 당시에 나를 회상하며 ‘쓰레기‘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 말이 농담이라고 하지만 진실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문제아였다. 그때와는 반대로 지금은 사람들이 FM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바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때에 비하면 인간이 됐다. 과연 무엇이 나를 이렇게 성장하게 한 걸까? 욱하는 아빠였지만 늘 나에게 선택권을 주셨었다. 본인이 해줄 수 있는 능력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 옆에 있던 엄마는 늘 조용히 묵묵히 나와 동생을 사랑으로 챙겨 주셨다. 슈퍼 하나 없던 시골이지만 자식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주셨다.

숙제와 씨름하며 엄마 아빠에게 도발할 목적으로 첫째가 책상에 쪽지를 써놓은 걸 보았다. ’나는 쓸모없어. 나는 바보야. 엄마는 날 싫어해~‘ 그 메모를 보는데 불현듯 얼마 전 부산에서 초등학생들이 투신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그 정도까지 아이의 마음이 힘들어하는지 아닌지 판단은 할 수 있지만. 혹여 그 판단이 틀리게 된다면 큰 후회와 아픔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은 타들어 가도 아이를 위해서 믿음과 사랑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걱정은 내 마음은 그렇게 정하고 실천하겠지만 자기 고집이 센 와이프는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중간에서 내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와이프의 성격과 생각이 바뀌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아이와 숙제를 했다. 모두가 잠들고 첫째와 단둘이 깨어있는 늦은 밤 답답함이 몰려왔다. 아이에게 먼저 자라고 하고 나도 씻고 방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도 내 삶의 방향과 답을 못 찾고 있는 것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인생의 좋은 방향을 알려줄지에 대한 고민이 명치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체증처럼 나를 꾹 누르고 있었다. 잠을 잔 듯 만 듯 피곤한 상태로 잠을 털어내고 출근을 했다. 여전히 머릿속에 그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퇴근 무렵 첫째에게 전화가 왔다. 다행히 오늘은 숙제가 없다고 한다. 오늘은 숙제로부터 벗어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딸아이와 불금을 보내야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4화 63. 엄마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