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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l 05. 2020

세잔느 어페어



The Cezanne Affair 세잔느 어페어 (2009)






우리가 불현듯 떨어져 내린 곳은


진흙 투성이의 이상한 세계였지. 


바로 그들이라는 좁고도 미끈미끈한 세계.


그들은 유일하고도 모든 것이었어.


난 아직도 기억해. 그 변덕.


마치 태초에 물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던 불처럼


뒤죽박죽으로 끓어오르던 그들의 변덕. 


그들이 별안간 웃고 갑자기 분노할 때


우리도 별안간 분노하고 갑자기 웃었지.


이제는 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


그건 정말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그냥 변덕이었다는 걸.


믿음을 갖거나, 이해하려고 하거나, 적응하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걸.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고


우리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학대했다는 걸. 


우리는 그들에게 냉담함을 배웠지.


이기적인 꿈과 오만한 가증을 배우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지.


타인이란 엄중하며 고독이란 절대적이라는 것도.


이제는 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 아주 조금.


그들도 그저 어느 날 불현듯 


이 진흙 투성이의 세계로 떨어져 내린 것뿐이라는 걸.


우리는 부모 자식 간이라기보다는 


고아원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들.


그래도 죽기 전에 한 번은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쯤은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긴 할까.


간단한 인사라도 나누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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