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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Oct 26. 2020

[연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연극 :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공연장소 : 이해랑예술극장

공연기간 : 2020년 10월 22일 ~ 2020년 11월 8일

관람시간 : 2020년 10월 25일 오후 3시





     정말이지 오랜만에 - 거의 2달 반 만에 마침내 - 보러 온 공연이라 어쩐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연극을 보러 갔던 날이 떠오르기도 했다. 연극을 보러 온 것이 마치 내 주제에 맞지 않게 황송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쭈뼛거리며 기가 죽었었지. 그런 소심함을 지금까지도 별로 극복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건 코로나 때문에 내 신경이 더 예민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내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내린 채 쉴 새 없이 떠드는 바람에 공연이 시작될 쯤에는 나는 몹시 불쾌해져 있었다.
     사실 나는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공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물론 배우의 연기는 '당연히' 훌륭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포스터를 배우의 얼굴만으로 가득 채운 저 자신감을 보라)  '신-인간-악마'가 상징하는 실존주의적인 고뇌는 이미 진부하고 지루할 뿐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괴테의 [파우스트] 자체가 진부해 보였다. 신이 없는 세상에 남겨진 인간과 악마의 다소 로맨틱한 애증관계와, 인간의 근원적인 방황과 타락이 주는 영감이 아니었다면 별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의 '당연히' 훌륭한 1인극 연기나 마음껏 감상하자, 하는 심정으로 나는 관객석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연극은 재미있었다. 두세 가지 문학작품을 우격다짐으로 짬뽕시킴으로써 상당히 혼란하고 산만한 방식으로 재미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번 정도 더 보고 싶을 정도다.   
     태초에 신이 있었다. 그리고 신은 우리를 창조하였다. 그래, 일단 이 대전제를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다음에 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휴가를 떠났는지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분명한 건 현재 신은 부제 한다는 것이다.) 신의 존재 앞에서 인간은 세 가지 정신적 실존을 형성한다. 신의 노예가 되거나, 신에 대한 반역자가 되거나, 신이 되려고 하거나. 신이 되려고 하는 자, 그가 바로 몽상가, 예술가, 배우이다. 그리고 악마는 바로 그 배우를 위한 무대에 다름 아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제안한 것은 파우스트가 '파우스트'가 될 수 있는 무대일 뿐이다. 파우스트가 '파우스트'가 되게 하기 위하여 악마는 시간의 섭리와 세계의 운행을 잠시 멈추게 하고 인간을 높고 뾰족한 무대 위에 세워놓는다. 그 순간만큼은 몽상가는, 예술가는, 배우는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느낄 것이다. 그리하여 [찰나의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라고 외치며 한껏 진지하고 당당해져서는 내키는 대로 메피스토펠레스가 되고 파우스트가 되고 이반이 되고 대심문관이 되어, 마음껏 울고 웃고 고통받고 떠들며 비극과 희극의 이야기를 생산해 낸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막은 내리고 배우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무대에서 내려온 예수가 부활하는 방식이다. 부활한 예수를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음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미 예수가 아니며, 다시 말하자면 그는 '예수'라는 역할을 연기하기를 그만두었던 것이다. 인간의 비극은 무대 위의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막이 내렸는데도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데 있다. 만약 막이 내렸는데도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악마라는 무대는 끝없이 넓어져서 배우는 물론이고 온 세상을 삼켜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순순하고 겸손히 무대에서 내려오는 배우를 - 그가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었든 간에 - 신은 궁휼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죽지 못했기에 부활하지도 못하는 예수는, 무대가 무대라는 걸 잊은 배우는, 자기 자신에게서 물러나지 못하는 인간은, 악마가 되어 영원히 무대를 전전할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라는 대사만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나는 보통 연극 감상을 쓸 때 장점과 단점을 공평하게 나열하곤 하는 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혼란하면 혼란한 대로, 불합리하면 불합리한 대로, 과장되면 과장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완성도가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저 농담처럼 하나만 지적하자면 중간중간의 분수쇼는 확실히 흥을 깨는 짓이었다. 위에서 퍼붓는 물만으로도 이미 느낌은 차고도 넘쳤는데 굳이 조악해 보이는 호스로 쭉쭉 물을 뿜어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아, '당연히' 훌륭했을 배우의 연기는 어땠느냐고? 배우의 훌륭한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연극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애초에 배우를 중심에 두고 연극 전체가 기획되었다는 느낌마저 준다. 뭐, 하긴 메피스토펠레스는 아무 하고나 계약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관객인 나 메피스토펠레스 역시 결코 만족할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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