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it Et Brouillard / 밤과 안개 (1955)
몹시 피곤한 어느 날의 악몽처럼
무력한 흑백의 장면들이 지나간다.
그것은 어떤 감정보다도 순수한 놀라움으로 시작한다.
상상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 어떤 밑바닥.
인간은 어디까지 사물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어지러운 인간성이란 걸 쭉 짜내버리면
거기에 뭐가 남아있을까.
바짝 말라붙은 등뼈, 동그랗고 단단한 머리, 텅 빈 눈꺼풀.
뒤엉킨 머리털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이빨.
우리는 사실 내심 궁금했지.
우리의 냉담함을, 우리의 잔인함을, 우리의 증오를,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호기심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인간이 의지를 통해
얼마나 멀리까지 자기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이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강인한지를 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고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본다.
영혼의 부질없음과 신의 부재에 대한 얘기는 지긋지긋할 뿐.
대체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모르겠어.
피해자에게? 가해자에게?
죽은 자에게?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에
방치되어 있는 것처럼
몹시 피곤한 어느 날의 악몽에서는
내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죽은 자인지 알 수 없는
무력한 흑백의 장면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