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불가코프
[조야의 아파트]는 인간을 건전하게 만들고자 했던 야심찬 정치적 이상이 오히려 어떻게 인간을 타락시키는가를 보여준다. 그 이상은 인간을 탈색하여 무색, 무취, 무차이의 구성원들로 집단화하려는 시도로서 결국 인간 개개인의 '욕망'을 부정하고 금지하겠다는 것인데, '욕망'이란 '자유'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럭저럭 평범했던 사람들이 자유를 박탈당하면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개인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억눌린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조야의 아파트'로 모여든다.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자유는 바닥이 없는 내면을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하여 모든 기준과 한계가 사라진 욕망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은 물론이고 원하지 않았던 것까지 탐내며 자신들의 전능함과 방종에 도취된다. 이 작은 아파트 안에서 그들은 마치 신처럼 자유로우며 악마처럼 행복하다. 이것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는 작고 매력적인 지옥이다.
이 희곡은 소비에트 독재 체제를 풍자하고 있다. 그 정치 체제가 꿈꾸는 것은 [완전한 평등]이다. 그것은 도덕적일지언정 비인간적인 것이고 비인간적인 것은 결국 비도덕적인 것이다. 인간은 결코 완전히 평등하지도, 완전히 평등해질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 완전히 평등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이다. 반면 '완전한 평등'은 평준화가 되고 평준화는 기계화가 되면서 이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그 기계화된 세상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 누군가는 무기를 들고 폭력의 소용돌이로 뛰어들겠지만,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남기 위해 타락할 것이다.
현대인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이라면 언제나 평등과 자유 중에 자유가 우선이었다. 반면 평등은 오직 자유를 위해서만 유효할 뿐이었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부당하고 불의하다고 가치 판단하는 것은 쉽지만 (인간은 언제나 지성적이고 이상적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정의를 꿈꾸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다른 행성의 외계인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공허해질 뿐이다. 인간의 역사는 결국은 자유의 역사이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미개함의 역사일 뿐이며 평등의 역사를 위한 시발점이나 전조에 불과하다는 발상은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사실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다. 인간은 불평등에 대해 저항하는 것과 똑같이 평등에도 저항하며, 불평등에 저항한다고 해서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불평등에 저항하면서 자유를 지향하며, 다른 말로 하자면 자유를 지향하기 위해 불평등에 저항한다.
자유가 억압받을 때,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잃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애초에 자연의 무차별적 평등을 거부하며 '인간'이 되었고 다시 인간의 무차별적 평등에 대항하여 '인격적 개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할 때 그 자유를 오용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드높이는 것이 바로 악마의 탄생 비화이다. 악마의 타락이 천사들의 용기만큼이나 비장하고 비극적인 것은 그만큼 자유란 본질적이고 끈질긴 것이기 때문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언급하자면 여기서 자유란 고고하고 영적인 경지의 것뿐만 아니라 모든 속물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속물적인 자유야 말로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좋은 집, 돈, 사랑, 매춘, 술, 음식, 예쁜 옷. 보석, 자동차 등등등..... 앞에서도 얘기했듯 [자유]와 [욕망]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이 열렬한 자유-욕망을 통제하는 것이 역사적 과제인 것은 사실이나 사실 희망 섞인 '통제'라는 단어보다는 '조정'과 '타협'이 더 적당한, 말하자면 현실적인 단어 선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조야의 아파트]가 만약 이 지옥의 외면을 그리려 했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정치적이고 교훈적인 슬로건들을 늘어놓는 건 쉬운 일이지만 우리를 경직되게 한다. 그러나 이 희곡은 온전히 말랑말랑한 지옥의 속살에 집중한다. 그 지옥의 아기자기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향긋한 여인들의 향수 냄새가 우리를 사로잡는다.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방식에는 언제나 즐거움이 있다. 콩 한쪽을 가지고도 만찬을 차려내는 인간의 능력을 보라. 그것은 경쾌하고 귀엽고 끔찍하다. 만약 그 지옥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다면 (모두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한없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한없이 타락할 수는 없다. 지옥이 끔찍한 이유는 그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이 끔찍한 이유가 그것이 영원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지옥은 무너지고 작은 악마들은 자유뿐만 아니라 평등까지도 빼앗기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천국이 승리한 것일까? 아니면 더 큰 지옥이 승리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