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인들의 객담

여러 작가들

by 곡도



[ 중세 시인들의 객담 ] 여러 작가들




처음에 나는 이 책을 아무 부담 없이 골랐다. 중세 시인들의 문학적 소묘나, 객적인 농담, 교훈적인 우화, 가벼운 시대적 풍습 정도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앞 표지의 그림을 자세히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화장실에서 읽듯이 심심풀이 삼아 쓱 읽고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이걸 좋은 반전이라고 해야 할지 나쁜 반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말해 음담패설이었다. 어렸을 때 고전 [아라비아 나이트]를 경건한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가 나도 모르게 페이지를 건너 뛰어가며 정신없이 읽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 표현의 노골성과 짓궂음 때문에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그것도 수위가 이만저만 센게 아니었다. 포르노 잡지처럼 직접적인 묘사는 아니어도 성적인 풍자와 비유의 수위가 상당히 적나라해서 나는 읽다 말고 - 거짓말 조금 보태서 -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재미를 위해 맛보기로 [농사꾼과 새앙쥐]라는 에피소드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여자에 대해 문외한인 농사꾼이 나이가 들어 한 여자와 혼인을 했다. 그 여자는 이미 사제와 연인관계정도로 남녀의 정에 통달해 있었다. 여자를 다룰 줄 모르는 농사꾼과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는 자신을 안으려고 하는 농사꾼에게 자신이 음호(여자의 성기. 개인적으로 생전 처음 보는 단어였음)를 친정집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농사꾼이 여자의 친정집으로 가서 사정을 말하자 여자의 어머니는 농사꾼에게 새앙쥐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건네주었다.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농사꾼은 호기심과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바구니 안에 자신의 '막대기'를 쑤셔 넣었다. 그 바람에 놀란 새앙쥐가 바구니 밖으로 튀어나와 도망가자 당황한 농사꾼이 새앙쥐를 쫓아가며 외쳤다.

[맙소사! 저렇게 예쁜 짐승이! 태어난 지도 얼마 아니 된 것 같아. 저렇게 작은데. 성부, 성자, 성신의 가호를 비는 수밖에. 내 막대기가 정말 무서운 모양이야. 그래! 정말 겁을 먹은 것 같아! 내 막대기의 검붉은 주둥이를 보는 순간 겁을 먹었어. 저것이 죽으면 정말 커다란 손실이야. 성모 마리아여! 제발 멈추거라! 오! 하느님! 어서 멈추거라! 네가 죽으면 나는 어찌하라고!]

농사꾼은 낭패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쯤 여자는 이미 사제를 불러들여 뜨거운 잠자리를 하고 난 뒤였다. 농사꾼에게 사정 얘기를 들은 여자는 음호가 얌전하게 돌아왔노라며 농사꾼을 달래었다. 그러자 안도한 농사꾼은 여자의 음호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중얼거렸다.

[가엾어라! 이슬에 흠뻑 젖었구나. 네가 숨이 차다 못해 기진하였구나.]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슬쩍 낯을 붉히기도 했다. 한마디로 나는 이 책과 꽤나 즐겼노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단지 음담패설집이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자극적이고 기발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책을 내 [책장]에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낄낄거리며 다 읽고 나자 돌연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다. 그 웃음은 마치 추운 겨울 한대에서 갑자기 뜨거운 물벼락을 맞았을 때와 같은 웃음이었다. 미처 짧은 웃음이 다 끝나기도 전에 뼛속까지 창백하게 얼어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위에 소개했던 [농사꾼과 새앙쥐]는 얄궂은 점 때문에 선택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전하려고 하는 점을 위해서는 적절한 예는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인간적인 정취를 많이 풍기고 있기 때문에 예외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독자들은 저 한심한 농사꾼을 비웃으면서도 동시에 애잔함과 동정심 같은 일말의 인간적인 관심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대부분의 나머지 이야기들은 그런 부드러운 감정이 끼어들 틈조차 없다. 책은 그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는 신랄하고 기계적인 사람들과 표현들로 가득하다. 그들에게는 신앙도 없고, 동정심도 없고, 도덕도 없고, 배경도 없고, 역사도 없고, 사랑이나 의리도 없는, 말하자면 인격적인 내면이라고는 없는 단단한 고무 덩어리처럼 잔인하고 전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며, 비열한 욕망에 대해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이 없고, 성性뿐만 아니라 인격마저 완벽하게 물질화시킨다. 본래 풍자라는 것이 조롱하기 위한 것이라 가혹할 정도로 인간을 비인격적, 비내면적으로 그리긴 하지만 이 이야기들 내저에 흐르는 일관된 시선은 - 내가 보기에 - 풍자라는 장르의 특성을 뛰어넘는 것이다. 소위 '인간'에 대한 철저한 냉담과 무관심. 바로 이것이 노골적인 성적 표현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내 구미를 자극했다.

나는 이 이야기들에서 '소돔의 120일'의 작가인 '사드'의 영감의 원천이자 원형을 보았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이 책의 인물들이 '사드'의 인물들보다 오히려 더 사드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드'의 이야기는 폭력과 폐륜과 귀족적 취향이 뒤섞여서 지나치게 매력적이고 장식적이며 심지어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드의 소설에서 자연스럽게 폭력과 성적 방종에 주목하지만 그것이 사드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이 책의 이야기들이 더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하게 [성적인 인간], 더 나아가 [자유로운 인간], 그리고 [탈인간적인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듯하다. 사드는 거대한 성을 세우고 수없이 아름다운 - 친딸들을 포함해서 - 여자들과 남자들을 동원하여 요란 벅적하게 강간하고 고문하고 학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문학적이고 거창한 허영과 장치들 없이도 '음호'와 '막대기'는 단번에 세상의 인간성을 뚫고 산처럼 우뚝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성性은 우리의 일상의 껍질을 찢어내고 그 속살을 드러내는 데, 사드의 그 과장된 설정들은 그나마 성性이 가지고 있던 일상성을 마저 제거하기 위해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소박한 책에서 더 뻔뻔하고 더 직접적인 사드적 인간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잔인할 정도로 냉담하며, 자신의 인격 안에서 비인격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불가능할 정도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고립되어 있는 인간이다. 우리 역시 뭐든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건 그 무엇도 없다. 우리는 전능하다. 단지 할 수 없을 뿐이다.

우리는 인간에게 갖가지 문학적 인격과 종교적 도덕을 부여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가상의 피부를 덧씌워 놓았지만, 성은 특유의 파괴력으로 인간의 안과 밖을 단번에 뒤집어 내장과 근육과 뼈를 밖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 자명함과 단호함 앞에서 애써 뒤집어쓴 외면의 고결함 따위는 한낱 농담이나 풍자 거리가 될 뿐이다. 그저 서민적인 질펀한 음담패설로 보이는 이 책은 실은 인간에 대한, 아니, 인간이라는 단단한 냉소를 날카롭게 품고 있으며, 그것은 단번에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들어온다. 마치 애정 없이 음호를 파고들어오는 쾌락의 '막대기'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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