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없는 세대

볼프강 보르헤르트

by 곡도




[ 이별 없는 세대 ] 볼프강 보르헤르트




나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전쟁에 참가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좋아한다. 감히 말하건대 전쟁터에서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기 때문이다. 전쟁은 삶과 죽음의 균형을 맞추어 준다. 삶과 죽음이 그토록 정면에서 뻔뻔하게 충돌하며 뒤섞이는 곳은 아마도 전쟁터 외에는 병원뿐일 것이다. 그러나 병원은 싸움보다는 정치적인 협상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어쩌면 전쟁터보다 더 폭력적이고 고독한 곳이다. 병원에서는 결코 장렬하게 전사할 수 없다. 그저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람씩 - 살아서든 죽어서든 -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요즘의 우리는 그러한 황당함에 - 사실 그것은 전쟁보다 더 극단적인 황당함인데 -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렸다. 병원은 이제 우리에게 생활이며 일상이 되었다.

병원이 차갑게 식어가는 곳이라면 전쟁은 뜨겁게 끓어오르는 곳이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펄펄 끓어올라 단번에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살아있는 채로 총알처럼 모든 걸 꿰뚫고 지나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결코 더 이상 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직도 살아있거나 이미 죽어있겠지. 그것이 우리의 실존을 정면에서 대면하게 해 준다. 문명과 역사, 이해와 오해,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간으로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모든 종교가 다다르고자 했던 경지일 것인데 전쟁터에서는 단번에 그 경지에 다다른다. (물론 뒤틀리고 짓이겨져서 어딘가 망가져버리고 말지만 말이다.) 평범한 인간도 그곳에서는 영웅이 되고,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고, 천재가 되고, 살인자가 된다. 소녀와 새와 구름을 사랑하던 소심한 예술가들마저 전쟁이 터지면 너도나도 총을 들고 전쟁터로 뛰어나가는 건 그 때문이다. 자가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니까.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이 행운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전쟁은 평범함을 대가로 비범함을 거래하는데 설사 그 평범함이 행복이라고 해도 인간은 언제나 비범한 불행을 탐욕스럽게 움켜잡을 것이다. 인간이 전쟁을 통해 성숙해진다거나 완성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의 본질과 현실을 직시하는 어떤 시점을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 시점에 우리의 면상을 짓누르는 것에 가깝겠지만, 어쨌건 우리는 무언가를 배운다.) 누군가 전쟁터에서 예술가가 되든 살인자가 되든, 혹은 둘 다가 되든지 간에 우리는 그것을 우러러보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사실 그들의 공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는 것이 그들의 공도 아니고 잘못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전쟁의 작가이다. 전쟁의 작가이고, 전쟁이 만든 작가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쟁이 빠진 그의 작품은 나에게는 참으로 시시했을 것이다. 그것은 보르헤르트 자신에 비해 현실이 너무나 건조하고 딱딱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현실에 비해 그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과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낭만적인 작가를 소화할 수 있는 곳은 전쟁뿐인 듯하다. 이 세상에 전쟁만큼 낭만적인 게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전쟁을 통해 마음껏 절망할 수 있었고, 무슨 말이나 지껄일 수 있었고, 실컷 눈물을 쏟을 수 있었다. 전쟁은 아무리 과장한 다해도 늘 충분하지 못하며 인류의 모든 걸 쏟아낸다 해도 전쟁의 시커먼 뱃속을 다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자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는 일말의 자유와 쾌감이 있다. 무엇보다 전쟁을 통해 부끄러움 없이, 의심 없이, 두려움 없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낯설고 신기한 일인가. 평화로운 시절에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조차 그토록 경멸하고 냉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처음 만난 이의 희미한 미소 조차 무슨 큰 신비라도 되는 것처럼 우러러본다. 어쩌면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진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낭만이 될까.

보르헤르트는 이렇듯 전쟁을 통해 비범하게 고양된 인간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잘 벼린 칼처럼 예리하지만 그 칼에 손잡이가 없는 것처럼 무력하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 구성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넋두리에 가까운데, 그 추상성은 그의 실제적인 경험과 문학적 예민함에 의해 훌륭하게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전쟁은 사실상 모든 이야기를 파괴하며 인간은 그저 생존이라는 작은 한 점 위에 서서 공허를 향해 자기 자신을 토로할 뿐이다. 그것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글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감상적이다. 그러나 전쟁 앞에서 감상적이 되는 것 외에 우리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의 글은 하늘 꼭대기에서 갑자기 날개를 잃은 천사가 더러운 하수구 바닥까지 추락하듯 그렇게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그러나 시궁창 속에서 가느다란 두 다리로 딛고 일어선 인간은 여전히 존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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