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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Dec 18. 2020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2006)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 넓은 세상에서, 이 영구한 역사에서, 


이 다채로운 사건과 사고에서, 의미심장한 업적과 모험에서,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는 냉엄한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되었을까.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까?


내심 크게 충격을 받았을까?


화를 낸다면 누구에게 내야 하나? 나 자신에게?


나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단죄하기 위하여


단단히 벌을 줘야 할까?


아니, 나의 무능함과 나약함이 바로 벌이기 때문에


그저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야 할까?


관객도 없는 배우가 되어 텅 빈 공연장에서 홀로 무대에 올라


아무도 듣지 않는 대사를 외치고, 아무도 보지 않는 춤을 추고,


결국 박수소리도 없이 슬그머니 퇴장해야 한다는 사실에


어느새 이렇게 익숙해져 버렸지.


비현실적일 만큼 단단한 현실의 저항을 딛고 일어나  


동정의 여지없이 사악한 악당에게 맞서서 세상을 구해내겠다는 


어린 날의 상상은 이제는 부끄러운 수치일 뿐.


그렇다고 오히려 나 자신이 동정의 여지없이 사악한 악당이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짓밟는 범죄라도 일으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의 야망도 분노도 깊지 않아서


그저 엑스트라가 딱 적격인 그런 시시한 인간.


그런데 엑스트라는 어째서 오늘도 최선을 다해


별 볼일 없는 한 컷을 만들어 내는가.


영화는 그 한 사람에게 존경과 위로를 바치기 위해


그를 불쑥 주인공 자리에 앉혀 주고는


이 대단하고 아름다운 드라마를 준비하였다.


또 다른 이름 없는 엑스트라들을 수없이 동원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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