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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Dec 30. 2020

엑소시스트




The Exorcist 엑소시스트 (1973)





어쩌면 이 영화는 신을 진지하게 다룬


마지막 영화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무리 신에 대해 고뇌하는 폼을 잡아도 


더 이상 진지해지지가 않는다. 


거기에는 언제나 약간의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유머가 섞여있기 때문이다. 


극도의 피로감과 함께.


하긴 몇 천년 동안 그토록 수다스럽게 떠들었으니


이제 입을 다물 때도 되지 않았나.


그래, 공정하게 말하자면


신이 수다스러웠던 건 아니다.


(심지어 벙어리가 아닌지 의심이 된다.) 


언제나 떠들고, 다투고, 죽이고, 죽었던 건, 인간이었다.


고통받는 나약한 인간들이 여기 있고 


사악하고 슬픈 악마들도 분명히 여기 있고 


심지어 신을 믿는 선한 자들의 얼굴에 마저


자포자기와 절망의 그림자가 분명한데 


신은 없었다.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별이 여전히 하늘에서 빛나듯


신은 영원한 과거형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부재를 통해 존재하는 신을 향한


존재를 통해 부재하는 우리의


(인간뿐만 아니라 악마도 함께 드리는)


마지막 기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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