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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an 25. 2021

시체

보들레르





               시체 


                                            보들레르




기억해보라, 님이여. 우리가 보았던 것을,

그토록 화창하고 아름답던 여름 아침:

오솔길 모퉁이 조약돌 깔린 자리 위에

드러누워 있던 끔찍한 시체,



음탕한 계집처럼 두 다리를 쳐들고,

독기를 뿜어내며 불타오르고,

태평하고 파렴치하게, 썩은

냄새 가득 풍기는 배때기를 벌리고 있었다.



태양은 이 썩은 시체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알맞게 굽기라도 하려는 듯,

위대한 [자연]이 한데 합쳐놓은 것을

백 갑절로 모두 되돌려주려는 듯;



하늘은 이 눈부신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어나는 꽃이라도 바라보듯.

고약한 냄새 어찌나 지독하던지 당신은 

풀 위에서 기절할 뻔했었지.



그 썩은 배때기 위로 파리떼는 윙윙거리고,

거기서 검은 구더기떼 기어나와,

걸쭉한 액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살아 있는 누더기를 타고.



그 모든 것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밀려나갔다 하고,

그 모든 것이 반짝반짝 솟아나오고 있었다;

시체는 희미한 바람에 부풀어올라,

아직도 살아서 불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세상은 기이한 음악 소리를 내고 있었다,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또는 장단 맞춰 까불리는 키 속에서

흔들리고 나뒹구는 곡식알처럼.



형상은 지워지고, 이제 한갓 사라진 꿈,

잊혀진 화포 위에

화가가 기억을 더듬어 완성하는

서서히 그려지는 하나의 소묘.



바위 뒤에서 초조한 암캐 한 마리

성난 눈으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놓쳐버린 살점을 해골로부터

다시 뜯어낼 순간을 노리며.



- 허나 언제인가는 당신도 닮게 되겠지,

이 오물, 이 지독한 부패물을,

내 눈의 별이여, 내 마음의 태양이여,

내 천사, 내 정열인 당신도!



그렇다! 당신도 그렇게 되겠지, 오 매력의 여왕이여,

종부성사 끝나고

당신도 만발한 꽃들과 풀 아래

해골 사이에서 곰팡이 슬 즈음이면.



그 때엔, 오 나의 미녀여, 말하오,

당신을 핥으며 파먹을 구더기에게,

썩어문드러져도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고!







* 좋아하는 시를 댓글로 소개해 주시면 소중하게 감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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